"가정의 달 5월요? 하루하루가 가정의 날이지요." 서울가정법원에서 지난 2005년부터 가사조사관으로 활동해온 백은형(사진)씨는 "가정의 달이 다가오는데 느낌이 남다르겠다"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는 "4년간 하루하루가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이혼소송으로 법원을 찾은 가정을 면접 조사하면서 수많은 사연을 접했기 때문이다. 가정법원은 재판부별로 전담 조사관이 배치돼 판사의 '조사명령'이 내려지면 조사관들은 면접조사나 출장조사 등을 통해 부부 간 갈등의 근원을 찾아내고 조율한다. 사건 하나하나가 '드라마'라는 백 조사관은 그 중에서도 잊지 못하는 사연이 하나 있다. 어려운 살림에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시누이 네 명을 뒷바라지한 50대 아내가 '내 인생을 살고 싶다'며 이혼소송을 낸 사건이었다. '안 된다'며 버티던 남편은 조사과정에서 자신의 인생사를 말하는 아내를 보더니 눈물을 흘리며 이혼에 동의했다. 전재산인 집 한 채의 지분 3분의1을 아내에게 주는 것으로 조정서를 작성한 부부. 그런데 남편은 잠시 후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아내에게 절반의 지분을 주고 싶습니다." 남편의 말에 조사실에 있던 사람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백 조사관은 "물론 이혼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서로가 이해를 통해 아름답게 헤어진 사례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소송으로 자칫 '적'이 될 수 있는 부부들이 조사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최종적으로 이혼소송을 취하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조사관들이 조사활동을 하면서 가장 걱정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은 양육 문제다. 초등학생 딸을 둔 엄마인 백 조사관은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 없이 벌어지는 상황에 아이들이 상처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아이들에게 진술서를 작성하게 하는 부모들도 있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실타래처럼 얽힌 부부관계를 풀어나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가정법원 조사관들은 오랜 기간 동안 고생한 사건에서 당사자들이 '다시 노력하면 잘 살아보겠다'며 소송을 취하할 때 에너지가 샘솟는다. 가정이라는 휴식처에 생긴 상처를 찾아내 '화해'라는 연고를 발라주는 가사 조사관. 백 조사관은 오늘도 '행복한 가정'을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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