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세계은행(WB)은 전 세계 189개 국가를 대상으로 '기업 환경 평가서(Doing Business)'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기업의 생애주기에 따라 창업에서 퇴출에 이르는 과정을 평가해 나라별 순위를 정한다. 올해 우리나라의 성적은 세계 5위였다. 보고서는 총 10개 부문을 평가하는데 통관행정 분야가 포함돼 있다. 20피트 크기의 컨테이너 한 개를 해상운송을 통해 수출입할 때 필요한 문서와 통관시간, 컨테이너당 비용 등을 평가해 발표한다. 이 분야에서 한국은 6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수출할 때 한국은 컨테이너 한 개당 670달러가 필요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070달러보다 적었다. 수입할 때 걸리는 시간도 OECD 평균이 10일인데 반해 우리는 7일에 불과했다. 수입비용 역시 695달러로 미국 1,289달러, 일본 1,021달러보다 경제적이었다. 통관행정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 국가들보다 우리의 통관 절차가 간소화돼 무역하기 좋은 나라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자료다. 우리의 통관행정 경쟁력이 높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등공신은 관세청 전자통관 시스템 '유니 패스'다. 유니 패스는 기업이 수출입할 때 반드시 필요한 물품 신고와 세관검사·세금납부 등 전 과정을 세관을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유니 패스는 1990년대부터 관세청이 자체개발해 수출입 환경 변화에 맞춰 구조를 개편해왔다. 세계 최초의 100% 전자통관 시스템으로 무역업체·선사·항공사 등 국내 26만개의 업체가 연계 운영되고 있다. 빠르고 안전한 화물처리 덕분에 국내 관련 기업이 연간 3조8,000억원의 물류비용을 절감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유니 패스의 또 다른 성과는 전자정부 수출의 효자상품이라는 점이다. 2005년 카자흐스탄에 처음 진출한 후 탄자니아·네팔·몽골·에콰도르 등 8개국에 수출돼 정부부처 단일 브랜드, 단일 상품으로는 최초로 수출 1억달러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싱가포르 크림슨로직, 영국 크라운에이전트 등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얻어낸 성과라 더욱 뜻깊다.
2010년 우리 시스템을 수입한 에콰도르는 통관시간을 7일에서 5일로 줄여 연간 320억원을 절감했다. 이 덕분에 에콰도르는 지난해 세계 관세기구로부터 기술혁신 대상을 수상했다. 이 같은 성과가 세계 각국에 알려지면서 유니 패스를 찾는 국가가 더 늘어나고 있다. 중남미 국가와 아프리카 주요 국가에서도 유니 패스 수출상담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한 국가와는 대규모 수출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유니 패스 수출과 구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관세종합정보망운영연합회 등과 협조해 3년 안에 2억달러 수출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다. 유니 패스 수출은 단순한 시스템 수출을 넘어 '행정 한류'의 수출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수출된 국가에는 우리 기업들에 익숙한 통관 시스템이 만들어져 유리한 수출 환경도 조성된다. 유니 패스가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한류를 넘어 행정 한류를 이끌어갈 주역이 될 것으로 기대해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