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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림을 더 좋아한다고 '이발소 그림'이라든가 '유한계급의 고상한 취미' 따위로 폄하하는 얘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모네의 '수련'보다 더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삶이 깊이 있고 깨어있어 보일 이유 역시 없다. 욕망의 진창 속을 헤매는 현실에서 천상의 음률을 탐하는 것이 죄가 아닌 것처럼.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여행의 기술''불안' 등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이 책에서 역사 속 예술작품 140여점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현학적인 해석이나 평가가 아니다. '예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아주 부당하게도 현재로서는 '조급하고 불합리하고 무례하다'고 여겨지는 질문을 다시 끄집어 낸다. 그저 신비한 영역에 남아, 자주 설명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추정의 대상이 돼버린 예술의 가치를 묻는 것이다.
작가는 예술이 우리의 어떤 타고난 약점들, 심리적 결함이라고 할 수 있는 약점들을 보완해준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자르거나 물을 나르고자 하는 욕구가 칼과 병으로 나타났듯, 예술도 그러한 우리의 취약한 점을 메우고자 한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그가 꼽는 일곱 가지 기능 중 '균형감각'을 얘기하는 장에서는 특히 한국의 백자 달항아리를 통해 겸손의 미덕을 본다. 표면의 작은 흠결들과 변형된 색, 이상적인 타원형을 벗어난 윤곽을 보여주는 백자는 외부의 시선에서 한 발 벗어나 있다. 스스로를 특별하게 봐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세속의 지위 때문에 오만하거나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또는 이런저런 집단에서 인정받고자 안달하는 사람에게, 이런 항아리를 보는 경험은 용기는 물론이고 강렬한 감동을 줄 수 있다. 다시 말해, 겸손함의 이상을 확실히 목격함으로써 자신이 그로부터 멀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그리고 그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당연히 인생의 큰 즐거움이지만, 가장 쉽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받는 것 역시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일이다. 시작 무렵의 터질듯한 두근거림은 이내 찾아오는 익숙함 속에 길을 잃기 마련이고, 좋은 연인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는 이 역시 예술에서 답을 찾는다.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고, 인내심을 갖고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등 예술은 사랑의 교훈을 담은 이미지를 창조하고 우리의 마음 앞에 붙들어놓는 역할을 한다고.
이같이 예술에서 시작해 사랑과 자연, 돈, 정치를 돌며 인생을 얘기하던 알랭 드 보통은 책 말미에 다시 예술로 돌아온다. 예술이 우리를 채웠다면 다시 삶으로 돌아오라고.
"예술의 혜택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예술을 언제 밀쳐두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일정 시점이 되면 우리는 미술관이나 공원 안의 조각품을 떠나 예술의 진정한 목적인 삶의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예술이 덜 필요하고 덜 예외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다."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은 2003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 받았고, 2008년에는 영국 런던 중심가에 '인생학교'를 세워 어른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모토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죽음ㆍ결혼ㆍ구직ㆍ야망ㆍ자녀교육 등 삶에 밀접한 내용을 다루는 이 교육과정은 현재 미국ㆍ호주ㆍ브라질ㆍ네덜란드ㆍ터키 등에도 설립돼 있고, 지난 5월 방한한 작가는 한국에도 설립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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