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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ㆍ이계안씨 모두 현대 출신인데 다른 게 뭐예요."
과일가게 여주인의 핀잔을 듣는 이계안 서울 동작을 민주통합당 예비후보가 멈칫한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사당시장을 돌며 인사를 하는 이 후보에게는 경쟁자인 정몽준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대표와 같은 현대중공업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재벌 개혁'이 화두인 19대 총선에서 현대자동차 대표라는 이 후보의 경력은 결코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서울 동작을은 19대 총선에서 6선의 정몽준 의원(예비후보)과 17대에 이 지역에서 당선된 이 민주통합당 예비후보의 대결이 이목을 끄는 곳이다. 두 후보는 서울대 동기동창으로 같은 해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같은 날 대리로 진급했다. 물론 이후 정 후보는 오너의 자제로, 이 후보는 전문경영인으로 길이 달랐다. 이 후보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국회에 진출하면서 현대가와 결별했고 당이 대선에 패한 후 18대 총선에 불출마했다. 그는 2006년과 지난해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패했다. 반면 울산에서 5선을 지낸 정 후보는 2008년 18대 총선에서 동작을로 옮겨 정동영 민주당 의원을 꺾었고 그후 기세를 몰아 여당 대표까지 지냈다.
이 후보는 "정몽준 의원과 다른 게 뭐냐고 물을 때마다 버선목 같으면 뒤집어 보이겠다"면서 "나는 열린우리당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18대 총선에서 자청해 정동영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는 게 유일한 답"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대표적 진보 정치인인 죽산 조봉암과 같은 길을 걸었던 아버지를 둔 그는 2000년대 초반 현대차 사장일 때부터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이익공유제를 주장할 정도로 진보 성향이라고 자처한다.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과일가게 주인 정모(48)씨는 "같은 현대 출신이라 통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지만 남편 김모(55)씨는 "그래도 똑같이 나온다면 민주당을 찍겠다"면서 "정몽준씨는 현대가에서 대통령을 만들려고 폼 잡는 게 아니냐"며 혹평했다. 동작을에 있는 뉴타운지구 두 곳 중 한 곳인 흑석뉴타운이 지지부진하자 여당을 찍었던 집주인들이 대거 전세를 주고 빠져나가면서 상대적으로 야당 성향인 젊은 층이 세입자로 들어온 점도 변수다.
26일 오후 사당동 이수역 근처에 있는 정몽준 후보 사무실. 여당에서 돌아선 민심을 의식이라도 한 듯 사무실 건물 밖을 덮은 현수막에는 새누리당이라는 당명과 로고 없이 '1번 정몽준'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일요일인데도 오전7시반부터 산악회 인사를 시작으로 빽빽한 일정을 소화한 그는 오후3시부터 남성시장을 한 시간 남짓 돌았다. "안녕하세요. 도와주세요" 하며 그가 고개를 숙여 손을 내밀 때마다 주민들은 "아이구 뭘 이렇게 나오셨어요. 걱정 마세요" 라며 격려했다. 연예인을 대하듯 함께 사진을 찍자는 요청도 많았다. 정 후보는 "바쁘게 출근하는 주민에게 인사하는 아침보다 낮이 쉬운 편"이라고 말했다. 동작을에 있는 숭실대의 '정주영 학과'와 손잡은 아산재단이 청년창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주민들에게는 화제다.
그러나 몇몇은 정 후보가 다가가자 손사래를 치며 악수를 거절했고 뻔히 눈이 마주치는데 험한 표정을 짓는 주민도 있었다. 영어강사인 박모(45)씨는 "정 의원은 큰 인물이고 힘도 있으니 뭔가 다르겠지라는 생각으로 인물만 보고 찍었는데 4년 동안 동네에 달라진 게 없다"면서 "이계안씨는 우리 아들 학교에 와서 열심히 강연하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숭실대생 장모(24)씨는 "누가 나오는지 관심이 없지만 새누리당은 안 찍을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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