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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션 코리아 2014] 세대갈등 '공존의 길'은 있다 <6> 끊어진 교육 사다리

"개천에서는 용 안 나온다"… 가난 대물림하는 반쪽짜리 공교육


돈많은 부모들 3~4세부터 거미줄 사교육

고교·대학·취업까지 계층간 갈등 고착화

중산층은 자식교육 위해 '에듀 푸어' 전락

교육불균형 없게 입시제도 근간 다시 짜야


# 중소도시에 거주하는 김모(27)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 1년6개월가량 백수로 지내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연간 1,500만원이 넘게 드는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에 인근 지방대학에 들어간 게 화근이었다. 지방대 출신에게는 서류통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신세를 한탄하며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빚까지 내 등록금을 쥐어줬던 부모와는 말을 섞는 일조차 드물어졌다.

# 박모(49)씨는 장래희망이 없다는 아들에게 "큰 꿈을 키우라"며 일류대 진학과 고시 준비 등을 언급했다가 되레 면박만 당했다. 아들은 일반고에서 명문대 입학에 필요한 요건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실무 역량을 갖춘 글로벌 인재'에게 필요한 조건 등을 줄줄이 읊어댔다. 박씨는 "출발부터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아들에게 반박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말 없이 고개를 떨궜다.

부모의 자산규모가 자식세대의 교육 성취도와 진학을 좌우하는 교육발(發) 빈부 대물림이 사회 전반의 세대갈등을 키우는 주요 원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3~4세부터 시작되는 '거미줄 사교육'이 고교 진학과 대학 입학, 직업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사실상 계층 고착화의 뿌리가 내리고 있는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중산층 부모세대는 자식 교육에 무리한 힘을 쏟다 '에듀푸어(edu-poor)'로 몰리고 꿈을 잃어버린 청년세대는 열패감에 겉돌다 '계층 하락'의 수순을 밟는 등 빈부가 가져오는 교육 불균형은 계층갈등과 세대갈등을 키우는 주요 배경이 된 지 오래다.



◇자식 학벌은 부모가 결정=최근 서울시교육청이 공개한 '서울교육 종단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중학교 1학년생의 주요 3개 과목 평균 점수(300점 만점)는 월소득 200만원 이하 가정에서 192.63점, 월소득 501만원 이상 가정에서는 218.32점으로 25점 이상 차이 났다. 소득 간 성적 격차는 지난 2010년 24.34점에서 2013년 25.69점으로 더욱 커졌다. 부모가 가난해도 자식이 똑똑하면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이 가능했던 시절은 이제 옛이야기가 됐다는 뜻이다.

특히 일반고에 비해 등록금이 3배까지 차이 나는 외국어고·과학고·자율형사립고 등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교육환경이 급변했다. 비평준화 시절의 명문고 위상을 사실상 대신하고 일류대 입학까지 주도하게 되면서 부모의 부는 고교와 대학 선택에 이어 직업 선택까지 좌우하는 원인이 됐다. 개교 30년도 안 된 한 외고가 이미 현직 판검사 배출 1위 학교다. 올해 서울대 등 일부 주요 대학에서는 일반고 졸업생의 입학률이 최초로 50%를 밑돌았다.

◇학테크가 빚테크로…허리 휘는 가정=부모들의 '학(學)테크'가 자녀들의 미래까지 좌우하면서 급팽창한 곳이 사교육 시장이다. 문제는 사교육 시장의 확대가 교육부채 증가 등으로 이어지며 일부 가정을 해체 위기로까지 몰아넣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3년까지 가계소득이 4.5배 확대되는 동안 사교육 지출은 5.9배 늘었다. 특히 700만원 이상 고소득층에서는 지난해 총지출 중 교육비 비중(13.2%)이 전 계층 가운데 유일하게 식료품 지출(12.5%)을 넘어섰다.

고소득층이 사교육 투자를 주도하면서 빚을 내서라도 자식을 가르치는 가구도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교육부채 규모는 약 28조4,000억원으로 전세자금대출의 50%에 근접했다. 교육부채는 지난해에만 전년 대비 12.3% 급증하며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6.0%)을 배 이상 앞질렀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노후준비까지 외면했던 에듀푸어 세대는 빈곤 노년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있다. 한모(63)씨는 "남들 하는 만큼 가르쳐 대학까지 마친 딸이 학원 없이는 토익 공부도 못하겠다며 학원비를 또 요구해 질겁했다"며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부채로 머리가 아픈데 자립하지 못한 아이들을 보면 씁쓸하다"고 말했다.

◇공교육 회복…근본 대계부터 다시 세워야=정부가 잇달아 사교육 방지, 공교육 정상화 대책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다. 전문가들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질적 차이'를 부르는 입시제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는 "교육과정과 시험이 쉬울수록 사교육의 효과가 커지기 때문에 사교육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시험이 일정한 난이도를 유지해야 사교육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갈수록 쉬워지는 교육과정은 사교육의 개입 여지를 늘리고 학생의 변별력마저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을 만든다는 것이다. 아울러 설립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는 외고·과학고 등 특목고의 정책 방향이 새롭게 재정립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전 세대 부유층이 똑똑한 판검사 사위를 맞았다면 현 부유층은 자기 자식을 그렇게 만든다는 게 허언만은 아니다"라며 "부모의 부가 교육과정을 통해 자식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입시제도의 근간을 새로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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