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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이양호 농촌진흥청장

FTA로 활짝 열린 농산물시장… 수출에서 돌파구 찾아야

제값 받을 수 있게 종자개량서 유통까지 국가별 맞춤 지원

1970년대 통일벼처럼…농업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육성 필요

ICT 융복합기반 '스마트팜'도 확 키워 생산성 끌어올릴것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발효로 우리 농산물 시장은 더 개방하기 어려울 정도로 활짝 열렸습니다. 시장개방으로 농가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많이 하는데 수출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우수한 품질의 우리 농산물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종자 개량부터 유통까지 아우르는 수출 맞춤형 기술로 지원하겠습니다." 이양호(56·사진) 농촌진흥청장은 지난 18일 전주 혁신도시에 위치한 사옥에서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농업의 위기를 돌파하는 길은 첨단기술을 통한 농업의 수출 산업화라고 밝혔다. FTA로 국내시장이 잠식될 수도 있지만 더 큰 시장으로 나가 수요를 개발하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청장은 "농진청은 1970년대 통일 벼 개발로 국민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다"며 "이제 수출 맞춤형 농산물 개발과 유통기술을 통해 농업이 우리 국민들을 먹여 살릴 미래 성장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지난해 9월 52년 동안 지속된 수원시대를 마감하고 농도(農都)인 전주 혁신도시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오는 3월이면 국립농업과학원·원예특작과학원·식량과학원·축산과학원까지 이전을 완료해 약 1,800여명의 농촌진흥인력이 한곳에 모인다. 농진청은 박사급 연구 인력만 800여명이 모인 국내 농업연구의 '싱크탱크'다.

이 청장은 본사를 전주로 옮긴 후 과거보다 현장을 자주 찾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전주가 농업 현장에 더 가까이 있어서다. 이 청장은 "요즘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농가와 농촌에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며 "현장과 가까워져야 농촌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생생한 농업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을 찾을 때마다 우리 농업이 처한 현실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대표적인 것이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현상이다. 농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농가 인구는 37.3%로 도시지역(9.2%)보다 4배 이상 높다. 하지만 평균 농가소득은 연간 약 3,500만 원 수준으로 도시 가구의 약 6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청장은 FTA로 인한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앞으로 우리 농가의 어려움이 더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하지만 그는 FTA로 열린 해외시장과 귀농·귀촌 인구 증가, 교통·통신 발달 등 우리 농업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 요인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주어진 현실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기회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청장은 "앞으로 저렴한 해외 농산물이 국내에 들어오면 국내 농산물 가격도 상대적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가격이 내려가면 결국 생산비를 줄이고 품질을 개선하는 방법을 찾아야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해법으로 품질개선과 유통기술 개발을 통한 수출확대를 제시했다. 그는 "해외시장에서 외국 농산물과 당당하게 경쟁하려면 뛰어난 품질과 유통기술 개선은 필수"라며 "수출 대상국의 현지 여건에 맞는 농산물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품질과 유통기술이 없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그는 특히 "품질 좋은 우리 농산물이 신선한 상태로 운송돼 해외시장에서 제 가격에 팔리게 하려면 국가별 수출 맞춤형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홍콩으로 수출되는 우리 딸기는 현지까지 배로 8일가량 걸리고 통관을 위해 며칠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결국 현지에 도착해 유통할 수 있는 시간은 1~2일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 생산된 딸기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청장은 "홍콩은 물론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에 수출하는 딸기에 이산화탄소(CO2)를 주입하는 수출 맞춤형 포장기술을 개발해 유통 기간을 3~4일 더 늘렸다"며 "싱가포르 수출용 멜론과 영국 수출용 감귤에 품질 저하와 부패를 방지하는 기술을 적용하는 등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경도가 단단해 잘 무르지 않는 수출 전용 딸기 종자와 개별 수출국의 잔류 농약 기준에 맞춘 딸기도 개발하고 있다. 수출용 토마토도 재배 시기와 방법에 따른 품질관리 방법을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드는 등 우리 농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기술을 적극 지원해나갈 계획이다.

이 청장은 농산물 수출 과정에서 비관세 장벽에 대한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FTA 타결로 세계에서 가장 큰 중국시장이 열렸지만 여전히 우리 농식품은 현지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청장은 "우리는 중국산 김치를 연간 20만톤가량 수입하지만 단 한 포기도 수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원전 사태 등의 문제로 일본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우리 제품이 중국시장에서 수요가 늘고 있는 이때 비관세 장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청장은 우리 농산물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려면 생산 주체인 농가의 생산성을 늘리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작할 수 있는 땅의 규모가 작은데다 노령화와 농촌 기피 현상으로 노동력이 부족해 현재의 방식으로는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스마트팜(smart farm)의 확산이다. 그는 "농가 가구당 평균 농지는 1.5헥타르(ha) 수준으로 미국(180ha)이나 호주(2,000ha)보다 작아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렵다"며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스마트팜을 보급하면 우리 농업의 생산효율이 선진국 수준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스마트폰으로 온도 조절과 사료 및 영양분 주입이 이뤄지고 이런 농업 정보들이 빅데이터로 모여 다시 각 지역 농가에 맞는 기술로 진화하기 때문에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농진청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시설농업 면적은 전체의 5%에 불과하지만 생산액은 전체의 절반(52%)이 넘는다. 시설원예와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한 스마트팜이 확산되면 생산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청장은 "올해 전국 9개의 농가를 대상으로 스마트팜 시범 사업을 실시한다"며 "스마트팜을 적용했을 때의 노동력 절감, 품질향상 효과, 투자비용 회수 가능 기간도 분석해 농가를 대상으로 체계적인 보급 확대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청장은 또 농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정책인 6차 산업화가 해묵은 규제에 묶여 있다고 지적했다. 6차 산업이란 농산물을 생산하는 1차, 가공과 유통을 하는 2차, 체험과 관광을 하는 3차를 합친 것으로 농업 경쟁력 강화 정책의 핵심이다. 그는 올해부터 농촌진흥지역에 농산물가공, 판매시설 등의 건설을 허용하는 등 규제가 완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농업 현장의 변화에는 못 따라간다고 아쉬워했다. 이 청장은 "도로가 몇 미터 이상 안 되면 체험 학습을 시작도 할 수 없게 하거나 상추를 씻은 맹물도 바로 버리지 못하게 하는 등 생각지도 못하는 규제가 너무 많다"며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등 여러 부처에 걸쳐 얽혀 있는 규제들을 풀어 농업의 6차산업을 확산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농업이 '제2의 인생'을 꿈꿀 수 있는 미래 산업이 충분히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른바 '생애소득'에서 농촌이 도시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는 "27세에 일을 해 57세까지 돈을 버는 직장인은 같은 기간 농업인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은퇴 후까지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며 "농업은 60~70세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농사를 지어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우리 농산물은 더 큰 해외시장에서 많이 소비되고 스마트팜으로 더 편리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면 농촌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일 농업시대에 대한 얘기도 꺼냈다. 이 청장은 "남북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 북한의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농업기술분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우리 농업기술을 즉시 북한에 이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에 대한 농업기술 지원은 최근 몇 년 동안 남북관계 경색으로 끊긴 상태다. 북한에 보존하고 개발해야 할 우리 농산품이 많아 기술교류를 위한 협력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부 차원에서 종자은행 등을 지어 우리 농산물을 보존하고 농업기술을 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농진청은 북한 농업지원을 위해 남북농업기술협력지원단을 설치하고 전담팀까지 조직했다.

이 청장은 농업이 성장하려면 소비자인 우리 국민들의 우리 농산물 사랑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우리 농산물은 우리 국민이 애용하지 않으면 존재하기 어렵다"며 "신토불이·로컬푸드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체질에 맞는 국산 농산품을 국민들이 소비해줘야 농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He is…

△1959년 경북 구미 △1978년 영남고 △1982년 영남대 행정학 △1983년 행정고시 26회 △1992년 태국 아시아과학기술원 농·식품공학 석사 △2003년 농림부 기획예산담당관 △2007년 외교통상부 주미대사관 공사참사관 △2010년 농식품부 농업정책국장 △2012년 농식품부 기획조정실장 △2013년 농촌진흥청장



"기후변화로 한반도 온도 상승, 아열대 작물 재배 새로운 기회"

2050년 평균 3.2도 상승
품종 개발 등 역량 집중


이양호 농촌진흥청 청장은 "기후변화로 인한 한반도 온도 상승이 오히려 우리 농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열대 작물 재배기술을 먼저 개발해놓으면 충분히 해외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청장은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가 통일 이후 한국 농업에 투자하라고 권유한 이유 중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영향도 포함돼 있다"며 "기후변화로 한반도에서 여러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국내외에서 더 많은 농산품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진청과 기상청에 따르면 한반도의 온도는 지난 100년간 1.7도 상승했다. 온도가 1도 상승하면 작물 재배선은 81㎞ 북상한다. 기상청은 2050년이 되면 한반도의 온도가 평균 3.2도, 재배선은 240㎞ 상승해 아열대 기후에 접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평균 재배선이 오르면서 현재 중부지방에서 재배하는 사과는 평양보다 높은 지역으로 남부지역에서 생산하는 귤은 중부지방으로 이동한다는 얘기다. 반면 따뜻해진 남부지방에는 열대와 아열대 과일을 생산할 수 있다.

이 청장은 "기후변화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온도와 강수량 변화에 따른 작물별 생산성, 재배 적지를 재설정하는 연구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이에 따라 용과와 아보카도, 모링가 등 열대·아열대 작물을 도입해 국내 환경적응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벼와 배추, 사과, 배도 더위에 강한 품종을 개발해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또 2100년까지 10년 단위로 월별 기상을 파악할 수 있는 농업용 전자기후도를 개발해 공개하고 있다.

이 청장은 "2050년에 가서 우리 토양에 적합한지도 모르는 열대과일을 들여와 심어서는 경쟁력이 생기지 않는다"며 "기후변화에 대응해 국내에서 여러 농산물을 키울 최적지가 어딘지를 미리 파악해 전략을 짜야 기회를 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담=김정곤 경제부 차장 mckid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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