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담배는 몸에 나쁘다. 불륜은 금지돼 있다. 과식은 비만을 부르고 건강도 해친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모두 지키는 사람도 없다. 많이 양보해서 '드물다'.
뇌과학ㆍ진화생물학ㆍ행동심리학의 최근 연구결과들은 한결같이 한 방향을 가리킨다. 인간의 의지력에 대한 의심. 인간은 욕망에 저항하도록 진화하지 않았고, 자유의지라는 말 자체도 수사에 불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요인즉 절제가 미덕일 수 있지만, 타고난 능력은 아니라는.
1990년 충격적인 금융 사기를 연대기적으로 기록한 논픽션 '원더보이'로 이름을 알린 저널리스트 대니얼 액스트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절제력을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해 묻는다. 산업화 이후 피할 수 없는 치명적 유혹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 덫들을 어떻게 피해갈 것인가, 그리고 그럴 수 있는가를 이야기 한다.
미국인 전체 사망률의 절반을 차지하는 원인은 일종의 느린 자살, 즉 '자제력 부족'이다. 흡연, 과음, 비만, 위험한 섹스 등으로 죽는 사람은 연간 1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전자자가 40만명이란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다. 과연 이들은 그러한 원인들을 몰랐는가 아니다. 오히려 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철저한 건강 관리 및 지옥 같은 교육과정을 견뎌낸 자제력 엘리트들에게 이전보다 후한 보상을 제공하고, 이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인간의 자제력이 과거에 비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욕망을 자극하는 기제들이 더 빠르고 정교하게 진화했기 때문. 1919년 닭 한 마리를 사기 위해 3시간의 노동 정도의 비용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15분에 불과하다. 인터넷은 하나의 재화나 서비스를 위한 비용은 물론 번거로움까지 제거했다. 포르노나 불륜상대 소개 사이트가 단적인 예다.
저자는 본인의 결단이나 의지 따위를 신뢰하지 말라고, 그리고 의지력ㆍ정신력에 의존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역사가 기억하는 명사들도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한 것은 별반 차이가 없다.
'죄와 벌''까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대작을 남겼지만 늘 도박 빚에 쪼들렸던 문학거장 도스토옙스키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항상 출판사와의 계약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집어넣었다. 마감일까지 원고를 넘기지 못하면 선지급금 외 잔금은 없고, 향후 9년간 모든 작품에 대한 권리를 넘긴다는 내용. 이런 극단적인 조치에도 그는 늘 마감 직전에야 작품을 마치기 일쑤였다.
율리시즈처럼 사이렌에 대항해 몸을 쇠사슬로 묶는 게 무리라면 '예방조치 도구'가 필요하다. 돈은 쉽게 인출할 수 없는 곳에 예치하고, 반드시 현금이 필요하면 부모에게서 조금씩 송금 받아 쓴다. 신용카드를 물통에 얼려 쓰기 번거롭게 하고, 섹스를 해선 안되는 남자를 만날 땐 가장 후줄근한 속옷을 입는다. 아이들에게 과자를 뜯어주며 자신은 손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식당에서 디저트가 나오면 못 먹도록 아예 절반 정도는 소금을 뿌려버린다. 물론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지만, 해본 이들은 입을 모아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미국 폭스방송의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의 주인공은 바로 욕구의 노예인 호머 심슨. 그 대척점에는 이웃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네드 플랜더스가 등장한다.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이고 무리력하고 멍청하고 배가 나온 심슨과 친절하고 잘생긴 사업가이지만 늘 심각한 문제를 고민하는 네드.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오디세우스를 떠올리든, 사이렌을 떠올리든.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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