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은 제게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빼앗았습니다. 산속에 숨어 살던 시절 어렵사리 구한 피아노와 쇼팽의 음반은 유일한 삶의 희망이었지요. 지금도 어딘가에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어린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을 믿고 현재의 절망을 이겨내기 바랍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가운데 가장 '쇼팽다운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당 타이 손(52)이 지난 21일 저녁 서울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쇼팽 탄생 200주년을 맞아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을 갖는 당 타이 손은 "수십년간 전쟁을 치르고 황폐해진 역사를 지닌 베트남과 민족끼리 피를 흘리며 싸운 한국의 역사가 닮은꼴"이라며 "전쟁은 평범한 내 어린 시절을 빼앗아갔지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예술로 승화돼 현재의 나를 완성한 것 같다"고 말했다. 포화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사랑과 피아니스트의 꿈을 잃지 않았던 그의 삶이 쇼팽의 아름다운 선율에 스며들어 어떤 연주자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그만의 쇼팽을 탄생시킨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구소련으로 유학을 떠난 당 타이 손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1980년 세계 최고 권위의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우승했다. 현재 몬트리올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당 타이 손은 올해 쇼팽 탄생 200주년을 맞아 어느 해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쇼팽의 바르카롤ㆍ왈츠 등을 독주로 연주하는 한편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을 국내 실내악단인 '콰르텟21'과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지천명을 넘긴 그의 꿈은 뭘까. "연주자로서 계속 이 자리를 유지하면서 발전하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연주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와 함께 당 타이 손은 2~3년 안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만들어 베트남의 클래식 꿈나무들을 체계적으로 키울 생각도 있다. 그는 "음악을 사랑하면서도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만나고 음악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키우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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