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송년회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때쯤이면 휴대폰이 노래를 부르거나 몸을 흔들어대는 이유 중 상당수가 '약속'을 잡거나 장소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한때 망년회로 하자 송년회로 하자 말도 많았지만 그래 봐야 술로 밤을 지새는 건 매한가지. 예전 같으면 전화나 e메일로 왔을 모임 소식이 이제는 카카오톡으로 날라 오니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송년회 또는 망년회가 우리 고유의 풍습은 아닌 듯하다. 옛날 수세(守歲)라는 풍습이 있었지만 섣달그믐에 온 집안에 등불을 켜놓고 밤을 새는 게 전부였다. 연말 술 모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99년 11월1일자 독립신문에서 '망년회'라는 단어가 나온 후. 1907년 12월29일자 대한매일신보는 관리들이 망년회를 빈번하게 개최해 일본 요리집이 큰 이익을 봤다고 전했으며 1920년대에는 '유흥의 총결산'이라는 표현도 나타났다. 예나 지금이나 송년회는 술과 불가분의 관계였나 보다.
△지금도 연말이면 술에 취해 거리를 헤매는 이들의 모습이 흔히 보인다. 새벽녘이 돼서야 들어와 아픈 속을 부여잡는 남편, 아내, 부모를 반겨줄 가족은 없다. 고주망태 송년 문화를 비난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가뜩이나 먹고살기도 바쁜데 정치인들의 싸움박질 소식과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만 들리니 이조차 없으면 질식할 수도 있다. 어쩌면 송년회는 견딜 수 없는 현실에서 숨 쉴 시간을 원하는 직장인의 고뇌를 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삼성그룹이 올해 송년회에서 '벌주'와 '원샷' '사발주'를 3대 음주 악습으로 꼽고 이를 몰아내기 위한 캠페인을 벌인다고 한다. 다른 기업들도 차분한 연말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술에 찌들지 말고 가족 혹은 이웃과 함께 보다 많은 시간을 가지라는 충고다. 확산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지. 아직도 이 나라는 술을 권하고 사회는 비틀거리는데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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