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9년 2월3일, 인도 서북부 디우(Diu) 해역. 아프리카를 돌아온 포르투갈 함대와 이슬람 함대가 인도양의 패권을 놓고 한판 승부를 펼쳤다. 외형적인 전력은 이슬람 함대의 우세. 이집트 맘루크 왕국과 인도 구자라트 지방의 술탄이 동원한 함선은 100척이 넘었다. 여기에 맞서는 포르투갈의 전력은 달랑 18척.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포르투갈은 바다뿐 아니라 육전에서도 이슬람 군대를 압도했다. 이슬람은 왜 포르투갈에 졌을까. 무기의 질 탓이다. 이슬람 연합함대는 적의 함선을 들이받는 전법을 고수한 데 비해 포르투갈 함대는 접근해 들어오는 적선을 대포로 깨부수었다. 포르투갈이 대형 군용선을 운용한 반면 이슬람은 빠르지만 가벼운 상선이었다는 점도 승부를 갈랐다. 양측이 싸운 가장 큰 이유는 동양 교역권 확보. 비단과 차ㆍ도자기 같은 진기한 동양 물품과 향료를 얻으려 아프리카를 돌아온 포르투갈은 인도양을 주름잡는 이슬람 상인들이 눈엣가시였다. 반면 이슬람은 포르투갈을 중국 등지의 특산물을 받아 유럽에 넘기는 중계무역의 방해자로 여겼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항에 중계무역 기지를 운영하던 기독교 국가 베네치아 공화국이 이슬람 연합함대에 기술자문을 해준 것도 기존 상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디우 해전 이후 힘이 약해진 이집트는 8년 뒤인 1517년 오스만튀르크에 정복 당해 속령으로 떨어졌다. 인도양의 상권은 이슬람 손에서 포르투갈로 넘어갔다. 대륙 간 교역의 주도권 역시 아시아를 밀어내고 유럽이 거머쥐었다. 보급마저 여의치 않은 이역만리의 해전에서 소국(小國) 포르투갈이 승리했다는 소식에 들뜬 유럽 각국은 배를 동쪽으로 보내 대항해와 제국주의 시대를 열었다. 디우 해전은 유럽에 의한 폭력의 세계화로 가는 첫발자국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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