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면서 노리고 노리면서 도망친다. 정작 칼을 뽑지 않고 은근하게 위협한다. 난전은 난전인데 타격은 보이지 않는다. 쌍방이 상대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절정 고수의 대결은 대개 조용하다.
그 조용함을 박영훈이 먼저 깨뜨렸다. 백90으로 풍덩실 뛰어들었다. 흑91은 절대. 이 수가 놓이자 왼쪽 백대마(우상귀 방면에서 흘러나온 그 백대마)가 상당히 약해 보인다. 그러나 박영훈은 노타임으로 92에 전개했다. 사이버오로 해설실의 백대현은 참고도1의 흑1 이하 5를 그려보이며 말했다.
"실리를 내준 흑은 백대마의 공격에 모든 것을 걸게 될 것입니다."
백대현의 예측은 빗나갔다. 이세돌은 실전보의 흑93으로 우하귀를 지키고 보았다. 여기서 박영훈은 다시 한번 과감한 뛰어들기를 시도했다. 백94가 그것이었다.
"박력 좋고! 박영훈이 오늘 펄펄 나는구나."(서봉수)
백대현6단은 참고도2의 흑1이 유력한 응수라고 말하고 있었다. 백2면 흑3 이하 9로 상변 쪽 백 15점이 잡힐 것이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겠지요. 어쨌거나 박영훈이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백대현)
그런데 이세돌은 흑95로 순순히 받았다. 여기서부터 박영훈이 형세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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