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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신뢰 잃은 용산개발 차라리 새 판을 짜라

용산국제업무단지 개발사업이 시장의 신뢰를 잃은 지는 오래다. 지금 같은 부동산 침체기에 사업 참여자들이 한데 뭉쳐 헤쳐나가도 될까 말까 한데 주주 간 반목과 불신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지난달 7,000억원대 민사소송 직전까지 간 갈등구조는 부도위기를 앞두고도 달라진 게 없다. 상대방이 받아들 수 없는 일방적 제안만 주고받을 뿐 현실적 대안모색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4조원대의 유상증자는 물론 급전조달용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과 전환사채(CB) 발행조차 주주 간 동상이몽으로 여의치 못한 상황이다. 유일하게 자금여력이 있다는 삼성물산도 더 이상 발을 담그기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대로 가다가는 파산을 면할 길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본금을 다 까먹어 급전을 조달하지 않으면 12일 만기 도래하는 59억원을 막기 어려운 처지다. 총사업비 31조원 규모인 단군 이래 최대 개발 프로젝트가 고작 수십억원조차 마련하지 못해 파산 위기에 직면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침체에 있지만 애초 장밋빛 수요예측을 토대로 한 방대한 개발계획 자체가 단초를 제공했다. 지금의 청사진은 부동산 활황기에 짠 것이니 땅값부터 비쌀 수밖에 없었다. 전체 면적의 30%를 배치한 상업용 시설은 COEX의 5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111층짜리 마천루를 포함해 60개 건물을 짓겠다는 과욕을 부리며 규모가 클수록 개발이익을 많이 남길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혔겠지만 지금은 바닥 모를 경기추락에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용산개발은 지금과 같은 지배구조와 원안을 고수한다면 성공은 고사하고 제대로 추진될지도 의문이다. 당장의 부도위기를 넘긴다 해도 부동산 침체에다 시장의 신뢰까지 잃은 마당에 어느 누가 선뜻 분양대금을 내고 투자하려 하겠는가. 단계적 개발도 근본적인 해법은 못 된다. 용산개발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서는 백지상태에서 새 판을 짜는 것 외에 달리 대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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