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등 전문가들에 따르면 번역은 엄연히 창작이고 저작권을 보호 받는 영역인데 여전히 '자막쯤이야'하는 생각이 업계에 만연해 있는 상황이다.
극장 영화용으로 작업한 자막을 번역가의 동의 없이 케이블TV나 DVD, 인터넷 매체 등에서 베껴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무분별한 복제는 창작자의 의욕을 떨어뜨려 번역의 질 저하로 이어진 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저작권 침해로 두 차례 법정소송을 치른 이진영 영화번역가는 "비록 승소했지만 보상금은 50만원에 불과했다"며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번역도 산고에 가까운 노력이 필요한데 너무 쉽게 베껴 써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제에서는 심지어 번역가에게 저작권을 포기하고 노예계약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일본ㆍ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방송 번역의 경우 '단가 후려치기'가 다반사다. 50분짜리 영상을 번역하는 데 10만원을 지급하는 케이블TV도 있다. 번역가들에 따르면 50분을 작업하려면 적어도 이틀이 걸리는데 이 경우 하루 일당이 5만원인 셈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번역 일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다 못하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고 한다.
한 번역가는 "10분짜리 영상 번역 계약을 맺고 작업해서 넘겼는데 실제 방송에서 2분만 쓰였다고 해 2분치 수당만 지급받는 일도 있다"며 "번역이 시장에서 너무 홀대받고 있어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원영희 성균관대 번역대학원 번역학 교수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번역이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알리는 길이고 나아가 국위선양과 직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번역에 대한 인식 매우 높다"며 "지금처럼 열악한 번역 환경에선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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