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초 문화관광부는 ‘2006 문화향수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3년 주기로 조사한 것인데 이번 결과에서는 몇 가지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2003년에 비해 예술행사 관람률은 62.4%에서 65.8%로 조금 늘었다. 하지만 영화와 문학행사를 제외하면 다른 예술 분야의 관람률은 감소했다. 특히 미술전시회 관람률의 낙폭이 컸는데 2003년 10.4%에서 2006년 6.8%로 격감했다. 97년 27.3%에 비하면 4분의1로 떨어졌다. 연평균 관람 횟수는 영화를 제외하면 2003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소득과 예술관람 사이의 미묘한 상관관계다. 3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의 관람률(81.5%)과 관람 횟수(6.6회)는 2003년(74%, 6.1회)보다 증가한 데 반해 100만원 미만 저소득층의 관람률은 25.3%에서 23.9로, 관람 횟수는 0.92회에서 0.86회로 감소했다. 소득 수준과 예술 체험 사이에는 정비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10월 서울대에서 열린 ‘60만원전’도 눈길을 끌었다. 개교 60주년을 기념해 미대 동문 작가들의 작품을 한점당 60만원에 팔았는데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북새통이었다고 한다. 열흘 동안 총 3만명이 몰렸고 작품당 평균 경쟁률은 100대1에 육박했다. ‘미술 로또’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콩나물값 하나로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서민들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예술작품도 수익성 높은 투자상품이다. 취향은 계급의 지표로 기능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에 따르면 예술과 문화소비는 사회적 차이를 정당화한다. 문화 자본은 불균등하게 분배되게 마련인데 미학적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소수의 문화귀족들은 저급하고 천박한 대중적 취향을 거부하고 심미적 안목이나 교양을 내세워 다른 계급과 자신을 구별하려 한다. 우리 사회에도 문화와 예술소비의 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계급의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 문화와 예술의 궁극적 지향점은 소통과 공유의 욕망이다. 그것은 화폐로 환산되거나 배타적 독점욕에 갇히는 것을 거부한다. 예술작품이 값싼 위안거리나 투자가치, 계급의 구별짓기 전략으로 타락할 때 예술의 창조적 활력이나 소통지향성은 불구가 되고 만다. 우리는 너무 일찍 예술을 자기 과시의 대용품이나 영악한 투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 그런 반성과 성찰마저 우리는 문화와 예술에 빚지고 있다. 박천홍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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