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지난 1971년부터 정부가 내건 산아제한정책 구호다. 산아제한을 기본 골격으로 한 이 같은 인구정책이 언제까지 이어졌을까. 불과 10여년 전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산아제한정책의 일환으로 정관수술을 무료로 해주고 훈련을 면제해줬었다. 2001년 합계출산율이 저출산의 기준점인 1.3명을 뚫고 내려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저출산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정부가 되레 애를 낳지 말라고 부채질을 했던 셈이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2004년 부랴부랴 준비작업에 착수해 2005년에 들어서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꾸린다. 이미 합계출산율이 1.0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다음이었다. 이때부터 5년 단위의 기본계획을 만들었지만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실효성 없는 정책들 탓에 제3차 계획이 시작되는 올해까지도 합계출산율은 여전히 1.3명을 밑돌고 있다.
이렇게 정부가 뒷북을 치고 있는 동안 우리나라는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 이상)가 시작된 지 불과 18년 만인 오는 2018년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14%를 차지하는 고령사회로 접어든다.
문제는 이런 고령화 문제가 저성장 고착과 맞물리고 있다는 점. 잠재성장률의 큰 축인 인구가 정체를 보이면서 저성장 고착을 가속화하고 이 탓에 성장엔진이 꺼져가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6%에 달했던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현재 3% 초중반까지 떨어져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고령화 충격이 더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경제성장과 고령화 속도가 발맞춰 나가면서 연착륙에 성공한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고령사회를 이겨낼 만큼 충분한 자본을 축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일본은 이미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로 올라선 후에 고령사회를 맞았지만 우리는 국민소득이 불과 3만달러에 턱걸이하는 순간에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 극복에는 여전히 뒷짐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저출산·고령사회 3기 위원회는 전체회의도 한 번 열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올해 2월 출범 2년 만에야 4기 위원회를 꾸렸다. 9월 예정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만들기 위해서다. 고차원 방정식인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준비기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김동원 고려대 교수는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복지 문제도 쉽게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것은 충분히 자본을 쌓기 전에 고령사회를 맞으면서 복지에 돈을 쏟아부을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며 "20년 뒤 뻔히 망할 게 보이는데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만 보고 있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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