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소방수 역할을 하던 독일마저 유로존 위기의 덫에 걸렸다.
23일(현지시간)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독일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신용등급은 'Aaa(트리플A)'로 유지했지만 향후 상황에 따라 신용등급 자체를 내릴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무디스는 "독일이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며 전망 하향 배경을 설명했다. 또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더라도 스페인ㆍ이탈리아 등 재정이 취약한 국가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고 유로존이 현재의 형태대로 유지되면 신용등급이 높은 국가의 부담은 더 늘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독일 일간지 디벨트는 24일 그리스가 유로존을 이탈할 경우 독일이 단기적으로 입게 될 손실이 830억유로(약 115조3,9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그리스에 대한 두 차례의 구제금융 지원으로 독일이 분담한 그리스 채권 손실상각분 370억유로를 포함한 것이다.
앞서 독일 주간지 슈피겔도 재무부의 내부 조사결과를 인용해 유로존이 붕괴될 경우 독일 경제 규모가 1년 만에 10% 위축되고 실업자도 현재의 2배인 50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했다.
무디스의 이번 조치는 승승장구하던 독일 경제가 후퇴 조짐을 보이는데다 그리스 9월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 및 스페인 전면 구제금융설이 제기되는 등 한동안 잠잠하던 유로존 위기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직후 단행된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동안 독일은 유로존 위기에도 불구하고 나 홀로 호황을 누렸으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최근 6개월 연속으로 경기 둔화를 뜻하는 50 이하를 나타내고 기업신뢰지수(Ifo지수)가 2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하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24일 발표된 7월 제조업 PMI는 43.3을 기록, 당초 전문가들이 전망한 45.1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40%에 달하는 수출이 최대 교역 상대인 유로존의 경기 침체로 위축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독일 재무부도 최근 2ㆍ4분기 경제성장률이 1ㆍ4분기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으며 하반기 경제 전망에 대해서도 "경제지표들이 미약한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들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독일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4ㆍ4분기에 -0.2%를 기록한 후 올해 1ㆍ4분기에는 0.5%로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재정위기국에 대한 독일의 익스포저(위험노출)가 크다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독일은 유럽중앙은행(ECB)의 지분 27%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유로존의 영구적 구제기금인 유로안정화기구(ESM)에 대한 출자 규모도 27%로 가장 크다. 분데스방크의 재정위기국 익스포저도 8,000억유로로 독일 GDP 대비 30%에 육박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도 독일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4일 1.2% 아래에서 움직이며 여전히 안전자산으로 각광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8일에는 2년 만기 국채를 -0.06%의 금리에 발행했다. 그러나 향후 5년간 독일 국채에 대한 부도 손실을 보장하는 데 드는 비용을 수치화한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3일 82.370bp(1bp=0.01%)를 기록, 2년 전 40bp 수준에서 2배가량 높아졌다.
한편 이날 무디스는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에 대해서도 'Aaa' 신용등급은 유지하되 등급 전망은 '부정적'으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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