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고려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가 또 주춤하고 있다. 재보선을 앞두고 연금논의가 정치화의 길을 가고 있어서다. 충분한 논의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배경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서 우리가 처음 연금개혁을 한다면 충분한 논의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국가들 대부분은 이미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개혁을 단행했다.
우리 역시 1990년대 중반이후 3차례 개혁과정에서 개혁 필요성과 개혁 방향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있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에는 세계은행이 국민연금과 동일한 수준으로 공무원연금을 맞추라는 정책권고까지 내놓았다. 우리가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있는 OECD에서도 2003년부터 2014년까지 공무원연금 개혁방향에 대한 정책권고가 있었다. 국민연금과 급여수준을 맞추던가,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개혁을 하라는 것이 권고안의 골자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대로 놔두면 2016년부터 2080년까지 매년 적자 보전액이 19조 7,000억원(2012년 현재가치로 매일 539억원)에 달하는 공무원연금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더 연구해야 해답이 나올 수 있을까? 아무리 연구해봐도 받는 액수를 깎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게 자명한 상황에서, 공적연금 강화란 명분으로 어렵게 개혁한 국민연금마저 되돌리자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제 우리도 복지제도를 잘 꾸려나가는 국가들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볼 때가 된 것 같다. 제도 개혁 필요성이 생겨날 때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사회 구성원이 골고루 혜택을 보며, 후세대에게 큰 부담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이들 국가의 책임의식을 배워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소모적인 정쟁으로 개혁논의가 흐르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탈정치화된 논의방식도 배워야 할 때다.
현재 연금 급여승률(1년 가입기간당 연금을 지급하는 지급률)이 1.5675인 일본은 2058년부터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1.275(40년 기준 51%, 30년 기준 38.25%의 소득대체율),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1.05(40년 기준 42%, 30년 기준 31.5%의 소득대체율)까지 급여율 하락이 예상되는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해 2110년(지금부터 95년 이후)까지도 지속 가능한 연금제도를 구축했다. 금년 10월부터는 일본 공무원에게도 적용될 제도다. 일본이 우리보다 못해서 세금으로 전액 지급하던 공무원연금을 공무원 자신이 보험료의 반을 부담하도록 하고, 결국에는 일반 국민과 동일하게 적용하는 후생연금에 가입시키겠는가?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의 성공여부를 평가하는 잣대는 급여삭감 정도에 있다. 2009년 공무원연금 개혁이후 몇 년도 지나지 않아 공무원연금 문제로 나라 전체가 시끄러운 것도 결국 제대로 된 개혁을 하지 않아서다. 개혁 대상자가 일부에 그치며 10년 이상 재직자의 첫연금이 한 푼도 깎이지 않아서다.
개혁 강도가 높을수록 구조개혁과 모수개혁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신구 공무원을 동일한 제도로 묶되, 급여 삭감폭은 크게 하고 공무원이 부담하는 보험료 인상폭을 최소화하는 것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다. 모수개혁의 경우 제도는 통합 운영될지라도 국민연금과 퇴직금 상당부분을 명확히 구분해 국민연금과의 비교가 쉽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가 개혁논의를 주도함으로써 파생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십분 활용해야 한다. 공정한 논의 진행, 투명한 자료 공개와 제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어서다.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면서 개혁논의가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적절한 논의범위를 정하는 것은 정부 몫이 되어야 한다. 객관적인 복수의 전문가를 통한 평가와 검증작업도 개혁논의를 탈정치화하기 위한 필수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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