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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담스럽다. 소재로 풀기보다는 소녀와 극단적인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는 그 주변에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6일 서울 CGV 왕십리에서 열린 영화 ‘한공주’의 기자간담에서 이수진 감독은 연출에 가장 주안점을 준 지점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이 자리에는 출연 배우 천우희, 정인선, 김소영도 함께 했다.
‘한공주’는 타이틀롤 영화로 주인공 17살 여고생 한공주(천우희)는 집단 성폭행을 당한 이후 가족과도 멀어지게 되며 전학을 가고 그 사건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지만 따뜻한 친구 은희(정인선) 덕에 조금씩 밝아지고 상처를 꾹꾹 참아가며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공주’는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도빌 아시아 영화제 등에서 수상을 하고 미국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가 극찬할 만큼 한공주의 아픔을 퍼즐을 맞춰가듯 섬세하게 연출됐다.
사건이 시간의 흐름으로 배열됐다면 한공주의 상처와 아픔이 무엇인지 쉽게 짐작이 가능하지만 감독은 이런 연출 방식에서 탈피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공주의 상처와 치유 과정을 천천히 그리고 퍼즐을 맞추듯 관객에게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이수진 감독은 “잊혀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인 (10대)성폭행, 왕따, 학교폭력 등의 소식을 접할 때 순간순간 분노했지만 제대로 된 분노인가를 고민했다”며 “그런 사건으로 인해 상처 입은 친구가 내 주변으로 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라는 물음에는 답이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소녀가 스스로 자신을 지켜나가려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고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로 만든 이유에 대해 전했다.
무거운 소재와 주제로 캐스팅도 연기도 어려울 것 같은 한공주 역을 배우 천우희(27세)는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천우희는 “시나리오 받자마자 내 것이다, 내가 하겠구나 싶었고 하고 싶었다”라며 “시나리오가 깔끔하고 읽자마자 내 것이구나 생각하는 한편으로는 (영화를)하게 되고 끝났을 때 공주가 돼 있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작품을 받자마자 뭘 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했고, 무슨 감정인지 관객이 헤아릴 여지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애쓴다는 느낌은 주고 싶지 않았고, 꼭꼭 감추려고 했고 있는 그대로 녹아 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학을 와서도 친구들과 사귀려 하지 않는 공주에게 먼저 다가가고 음악적 재능을 알아봐주는 친구인 은희 역의 정인선(23세)은 공주가 겪은 사건을 동영상으로 보게 된 직후 공주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는 장면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저라면 받을 거 같아서, 저는 진짜 이해가 안 갔어요. 받고 싶을 거 같고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왜 안 받냐고 감독님에게 물어보니까 진짜 너라면 받을 거 같아 라고 되물으셨어요. 찍으러 가기 전에 결정 내린 게 내일 만날 거라고 생각했으니 지금은 내가 너무 놀랐는데 내일 너를 만날 거니까 그 전까지 정리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정리를 하고 촬영에 임했고 찍을 수 있었다”며 은희마저 공주를 외면하는 것 아닌가 싶게 하는 안타까운 장면에 대해 설명했다.
같은 사건의 피해자이자 공주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화옥 역의 김소영(23세)은 “공주가 기타를 들고 노래할 때 흥얼거리다가 좋다 이러는 장면 이쁘더라”며 “화옥의 입장에서 마지막에 공주랑 책상에 엎드려서 눈물 한 방울 흘리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같은 고통을 당한 두 소녀가 책상에 엎드려 마주보고 눈물을 한 방울 뚝 흘리는 장면은 김소영이 아니더라도 관객들이 명장면으로 뽑을 만큼 아름답고 슬프다.
한편 ‘한공주’는 청소년 이야기를 다뤘음에도 상영등급이 청소년 관람 불가다. 이 감독은 이에 대해 “청소년, 제 또래 그리고 학부모들이 함께 봤으면 했는데 아쉬웠다”며 상영 등급에 대한 안타까움도 전했다. 4월17일 개봉. 1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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