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변방이지만 한때 강소국의 대명사로 불리던 아일랜드에서 다시 불거진 유럽 재정위기가 국제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아일랜드 사태는 표면적으로는 올봄 그리스 재정위기 때를 반면교사 삼아 사태의 조기 수습에 나선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 카드를 아일랜드가 거부하면서 증폭됐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유로존(16개국) 상당 국가가 당면한 재정적자 누적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에는 구제금융 차원을 넘어 국가부채 재조정 또는 국가부도(디폴트)에 빠질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에서 비롯된다. 유럽이 한목소리로 구제금융 수용을 연일 종용하는 것도 초동 진압에 실패할 경우 또 다른 재정위기의 화약고인 이탈리아와 포르투갈ㆍ스페인 등으로 위기가 전염될 수 있다는 절박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헤르만 판롬푀이 EU 상임의장은 "아일랜드 위기는 유로화와 EU에 있어 결정적 순간"이라며 "우리는 지금 생존위기(survival crisis)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아일랜드 해법 도출이 지연되면서 16일(현지시간) 유럽과 뉴욕 증시는 각각 2%, 1% 이상 급락하고 달러 가치는 7주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국제금융시장은 불안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다만 아일랜드가 결국에는 구제금융을 수용할 것이라는 관측에 위기감의 강도는 다소 누그러지고 있다. ◇ECBㆍECㆍIMF 구제금융 3인방 아일랜드로=16일에 이어 17일에 열린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재무장관회의에서는 아일랜드 구제금융에 대한 방안을 놓고 물밑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브라이언 레니핸 아일랜드 재무장관이 "EU와 국제통화기금(IMF) 프로그램으로의 편입이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항변했으나 다른 회원국들은 주변국으로의 사태확산을 우려해 구제금융지원 신청을 촉구했다. 특히 유로존 내 차기 위험지역으로 꼽히고 있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조차도 아일랜드에 조속한 결단을 요구했다. 이날 회의에서 최종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올 초 그리스 사태 당시 해결사로 나섰던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위원회(EC), IMF 등 구제금융 3인방이 이번주 안에 더블린을 방문, 아일랜드의 재정상황과 은행 시스템을 점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구제금융이 단행된다면 지원규모는 최대 1,000억유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클라우스 레글링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운용 책임자는 "수일 내에 실질적 자금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아일랜드 정부가 최종 결단만 내리면 구제자금이 곧바로 아일랜드에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일랜드 위기 아닌 유로ㆍEU의 생존 위기=유로존 국가들이 아일랜드 사태에 조속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한 국가의 위기로 금융시장이 마비되고 다른 회원국의 숨통까지 옥죄는 도미노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현재 유로존 16개 회원국은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제금융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의 각국이 상대방의 경제와 국채에 크게 노출돼 있는 것도 문제점이다. 판롬푀이 의장은 "유로존을 지키지 못하면 EU도 지키지 못하게 된다"며 "모두 힘을 합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시장 전문가들 역시 아일랜드 사태가 일단락되더라도 유럽의 위기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스콧 마이너드 구겐하임파트너스 투자수석은 "유럽의 재정위기가 겨우 시작단계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이제야 알아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채권은 피하고 스페인 은행에 대한 노출도는 줄이고 있다"며 "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은 유로화 약세 정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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