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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준비하고 있는 손해배상소송에 보건복지부가 또다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사상 첫 정부 차원의 담배 소송이라는 결전을 앞두고 복지부와 건보공단이 번번이 엇박자를 내고 있는 모양새라 정부 내부에서부터 의견을 모으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건보공단은 지난 24일 임시 이사회에서 담배 소송 규모에 따른 6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늦어도 26일까지는 담배 소송 규모를 확정하고 소송을 맡을 외부 변호사 모집공고를 내기로 했다. 이를 통해 늦어도 오는 4월 중에는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 계획이다.
하지만 건보공단의 감독 상급기관인 복지부는 승소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내용을 공유하고 논의한 다음에 본격적인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고 판단하고 소송 규모 확정·발표를 미뤄줄 것을 건보공단에 요청했다. 이에 따라 건보공단은 26일 담배 소송 규모를 확정하고 변호사 모집공고를 내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복지부가 건보공단의 담배 소송에 제동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복지부는 공단이 1월24일 이사회에서 담배 소송 제기를 확정하기로 했을 때도 담배 소송 안건을 정식 의결안건이 아닌 보고안건으로 상정하라고 지시했다. 담배 소송 제기는 시기상조라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24일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공단이 소송 규모와 소송 대상을 결정하려고 했을 때도 복지부와 기획재정부는 "담배 소송의 기본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담배회사의 위법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신중한 결정을 주문했다.
이동욱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건보공단이 밝힌 6가지 시나리오별 승소 가능성과 담배회사의 위법성을 뒷받침할 근거 등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공유와 논의가 덜 된 상태인 만큼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담배 소송에 질 경우 앞으로 금연정책을 추진하는 데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소송에 임하자는 것이지 소송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관계자는 "1월24일 이후 수차례 복지부에 찾아가서 소송 관련 내용 설명회를 가졌으며 실무 단계에서도 많은 논의를 해왔는데 아직도 설명과 논의가 부족하다고 하니 답답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담배회사의 위법성 증명 부분은 이미 많은 해외 사례의 검토를 마쳤으며 소송 과정에서도 추가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하다"고 전했다.
담배 규제에 대한 전세계적인 협약인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 따르면 담배회사는 내부문건을 업무상 비밀이라는 이유로 숨길 수 없는데 소송 과정에서 이러한 점을 부각시켜 담배회사의 내부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건계의 한 인사는 "복지부와 건보공단이 한 몸이 돼 준비해도 승소할 수 있을지 모르는 마당에 협업은커녕 불협화음만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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