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국의 경제지(誌) 이코노미스트는 아르헨티나의 정부공식 통계기관인 국립통계센서스연구소(INDEC)의 인플레이션 통계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광범위하게 통계조작을 해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정부가 발표한 연간 물가상승률은 9.7%지만, 민간연구소들은 25%가 넘는다고 주장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정부통계 대신 미국계 은행계열의 연구소가 제공하는 아르헨티나 물가통계를 싣는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하면서 지난해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장에서 만난 한 노동계 인사가 했던"공무원노조와 정부가 임금 협상을 할 때도 민간 물가통계를 이용한다"말이 떠올랐다. 당시 주요20개국(G20)에 속하는 나라의 정부가 국가 기본 통계를 멋대로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한국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는 우리에게 포퓰리즘 국가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다. 대선을 3개월 앞둔 시점에 아르헨티나를 찾은 기자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취재를 했다. 재원을 감안하지 않은 채 거듭되는 연금 인상, 정부 재정을 축내는 각종 보조금 등 선심성 정책의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포퓰리즘 정책보다 더욱 크게 와 닿은 것은 현 정부에 반대하는 야당은 물론, 대다수 국민들이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난 1940년대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은 서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인기영합적 정책을 펼쳤고 이를 통해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유산은 여전히 아르헨티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벨그라노대 페르난도 라보르다 교수는 집권 여당뿐 아니라 10여개가 난립돼 있는 야당 역시 페론주의에 뿌리를 둔 정당이며 국민들 역시 국가의 미래보다는 당장 정부가 쥐어주는 돈의 단맛에 길들여져 있다고 탄식했다.
지난해 아르헨티나에서 유출된 외화는 200억달러가 넘는다. 중앙은행이 보유한 외환보유액이 460억달러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2001년 국가부도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 많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자국화폐인 페소화로 저축하지 않는다. 대신 약삭빠른 사람들은 인근 파라과이나 브라질 또는 미국 등으로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최근 세계각국의 비난에도 국내 산업보호를 내세워 수입허가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어떻게든 빠져나가는 외화를 줄여보기 위한 고육책일 것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치솟는 곡물 및 원자재가격 덕분에 고성장을 구가했던 아르헨티나 경제에 다시 위험신호가 켜지고 있다는 외신들의 보도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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