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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슈바이쳐로 불렸던 설대위(미국명 데이비드 존 실) 전 예수병원장이 지난 21일 오후1시(한국시각) 고향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몬트리트 자택에서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6ㆍ25동란 직후 전주에 호남 최대규모의 ‘예수병원’을 짓고 36년간 인술을 펼쳤던 그는 90년 귀향해 자녀들과 함께 살아왔었다. 수년 전부터 노환으로 투병 중이던 그는 21일 제2의 고향인 한국을 뒤로하고 생을 마감했다. 설 전 원장의 한국과의 인연은 6ㆍ25동란 직후인 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의대를 졸업한 그는 54년 미국 남 장로교 의료선교사로 아내 설매리(미국명 매리 배첼러 실)와 함께 전주를 찾았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주민들이 기근과 질병에 시달리는 실상을 지켜본 그는 아내 메리와 함께 당시 다가동 언덕 위에 자그마한 진료소를 설치하고 환자 치료에 나서게 된다. 의술과 희생ㆍ봉사정신으로 주민치료에 온 힘을 기울였고 탁월한 사업경영 수완을 발휘한 끝에 예수병원을 60~70년대 호남 지역 최대 병원으로 키워냈다. 아내와 함께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고, 특히 돈 없는 불쌍한 처지의 환자를 많이 보살피는 등 따스한 인술로 ‘전북의 정신적 스승’이란 애칭도 얻었다. 특히 설 전 원장은 64년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암환자 등록사업을 시작한 데 이어 대한 두경부학회를 설립하는 등 국내 암치료와 소아마비 퇴치사업 분야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69년부터 87년까지 만 18년간 예수병원 원장을 역임하면서도 완주군 소양과 용진ㆍ동산ㆍ고산 등 농촌보건 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으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각종 훈장과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76년 국무총리 표창을 시작으로 국민훈장 목련장(대통령ㆍ78년), 상허대상(건국대ㆍ98년), 인도장 금장(한국적십자사ㆍ2001년)을 수상했고 97년에는 전라북도 명예도민이 됐다. 노환으로 투병 중이면서도 예수병원 암센터 건립을 위한 미국 내 모금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8월에는 암치료 고가장비인 ‘고에너지 선형가속기’를 예수병원으로 보내오는 등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아낌없는 사랑을 보냈다. 예수병원은 김민철 병원장 등 조문 대표단을 그의 고향으로 보내 분향하고 고인을 위한 기념사업을 펼쳐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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