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에 대한 ㈜효성 등 건설사들의 취소청구 소송이 잇따라 패소하면서 건설 업계는 침통한 분위기다. 30여곳의 중대형 건설사가 담합행위로 무더기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되는 것 자체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아직 소송이 마무리되지 않은 대보건설에 대한 확정판결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LH의 한 관계자는 "개별 업체별로 부정당 업체를 지정할 수도 있겠지만 법원의 판결을 보고 한꺼번에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며 "효성의 판결 사례가 있기 때문에 (대보건설의 판결도)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LH가 담합에 가담한 업체들을 부정당 업체로 지정하면 해당 건설사는 상당기간 공공부문의 영업이 금지된다.
현행 국가계약법에 따르면 부정당 업체로 지정되면 최장 2년까지 정부와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의 입찰자격이 제한된다. 대체로 입찰담합행위를 통해 낙찰 받은 업체의 경우 대부분 1년 이상 입찰제한이라는 중징계를 받게 되며 단순 '들러리'로 참여한 업체도 보통 3~6개월 정도의 입찰자격제한 조치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가뜩이나 건설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입찰자격제한은 건설사에 사망선고나 다름없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6개월 미만의 단기 제재의 경우 비수기 등을 이용하면 손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지만 현재 중견 건설사들의 상황을 감안하면 자칫 매출ㆍ수주 감소 차원을 넘어 기업의 존립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1년 이상 입찰자격제한이 예상되는 낙찰업체의 경우 큰 피해가 우려된다.
업계 관계자는 "입찰자격제한은 건설공사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용역과 자재 납품 등 모든 공공사업에 입찰을 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공공 수주 비중이 큰 업체들은 자칫 부도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정당 업체 지정이 현실화되면 건설사들이 유일하게 기댈 곳은 정부의 사면밖에 없다. 지난 2011년 감사원은 LH와 한국도로공사ㆍ한국전력 등에 허위입찰서류를 제출해 낙찰 받은 건설사 77곳을 적발해 각 기관에서 이들 업체를 부정당 업체로 지정했지만 이듬해 1월 정부의 사면 조치로 실제 제재를 받은 업체는 한 곳도 없었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로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는 분석이다. 담합행위에 대한 면죄부는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역행되는데다 4대강 사업의 검찰조사, 원자력발전소의 입찰비리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정부 입장과도 상반되기 때문이다. 특히 기획재정부 역시 올 초 담합행위에 대해서는 과징금 처분이 아닌 부정당 업체로 제재하라는 내용으로 국가계약법을 강화한 뒤라 더욱 그렇다.
업체의 한 관계자는 "건설경기 침체라는 이유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하지만 중견 건설사가 무더기로 영업정지를 당한다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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