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이 성공한 것처럼 법률 한류도 세계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미국ㆍ유럽 등 법률 선진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국내 법률시장은 완전개방을 앞두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 법률 시장 개방으로 국내 로펌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지만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갑유(사진ㆍ49ㆍ연수원 17기) 변호사는 다르게 생각한다. 현 상황을 법률 한류가 해외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회로 본 것이다.
그의 발언에는 자신감 이상의 확신이 배어 있었다. 확신의 원천은 김 변호사 자신의 인생이었다. 어린 시절 다른 사람 눈에 비친 김 변호사의 모습은 말수가 적은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남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때는 발이 떨리기까지 했다. 판사를 꿈꿔왔을 뿐 단 한번도 변호사, 그것도 전 세계를 상대로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국재중재전문 변호사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지금은 국제중재의 최고 권위기관인 유엔 산하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A)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세계 3대 국제중재기구인 국제상업회의소 중재재판소(ICC Court of Arbitration)와 런던국제중재법원(LCIA), 미국중재인협회(AAA)의 상임위원으로도 선출된 바 있다. 본인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이룬 그에게 한국이 아시아 법률 시장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은 망상이 아닌 아직 이뤄지지 않은 현실에 불과했다.
자신감만으로 법률 한류를 이뤄낼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국내 법조인이 다른 어느 국가의 법조인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확신하고 있었다. 김 변호사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처음에는 잘할 수 있을까 여러 번 생각하며 주눅도 들었지만, 막상 부딪쳐 보면서 한국 법조인들의 우수성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10년 전만 해도 국제중재의 불모지였던 국내에서 국제상사중재위원회 사무총장이 나왔고, 김 변호사를 이어 최근에는 김앤장의 박은영 변호사가 LCIA 상임위원으로 선임됐다. 국내 5대 로펌들도 국제중재업무를 담당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 법조인은 본인들이 우수하다는 생각을 안하고 있다"며 국내 법조인들이 자만심이 아닌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외국 로펌을 파트너로 생각해야 한다"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외국 로펌에 대한 지나친 적대감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 로펌의 경쟁력은 배우면서 국내 로펌이 주도하는 법률 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법률투자를 위한 국가의 지원도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내달 15일이면 김 변호사가 국제중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시장에 국제중재팀을 만든 지 꼭 10년이 된다. 김 변호사는 "남들이 보기엔 모든 걸 이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가 느끼기엔 대단하지 않다"며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있다"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 국제중재 바람을 불게 했던 그가 법률 한류를 새로운 목표로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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