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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 경기부양 나섰지만…] "바주카포 아닌 총다발"… '디플레 탈출' QE 성공에 달렸다

美·獨 증시 등 일제 올랐지만 유로화 가치 강세로 약발 주춤

"자산매입등 추가 양적완화 실시" '드라기의 승부수'에 시장 촉각



"유럽중앙은행(ECB)이 통화정책 불꽃놀이에 불을 붙였다." (카스텐 버제스키 ING 이코노미스트)

"ECB가 대형 바주카포가 아니라 총알 다발을 쏴댔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전 핌코 최고경영자(CEO))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5일(현지시간)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초단기 예금에 마이너스 금리 도입, 기준금리 추가 인하 등의 통화완화 정책을 발표하자 나온 상반된 반응들이다. 이처럼 평가가 엇갈리면서 유로화 가치가 급락세를 보이다 강세로 돌아서는 등 금융시장도 출렁거리는 모습을 나타냈다. 또 시장의 관심은 ECB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실시했던 양적완화(QE) 조치를 언제 어떤 규모로 도입할지로 옮겨가고 있다. 유럽의 디플레이션 탈출 성공 여부가 여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 컨센서스다.

◇환호성 지르다 만 시장=이날 ECB의 정책발표에 글로벌 금융시장은 초반에 박수를 보냈다. ECB가 강력한 디플레이션 극복 의지를 나타내면서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상승한 것이다. 이날 미국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럽 증시도 대부분 상승세를 나타냈다. 독일과 프랑스 증시가 각각 0.21%, 1.06% 올랐고 재정위기를 겪었던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각각 1.12%, 1.52% 상승했다.

하지만 시장의 환호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잦아들었다. 이날 ECB의 발표 직후 뉴욕시장에서 유로화는 달러화 대비 1.3505달러까지 급락하며 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더니 결국 1.3661달러로 급반등했다. 유로화는 엔화에 대해서도 유로당 139.90엔을 기록하며 강세를 보였다.

ECB가 돈을 풀겠다고 하는데도 거꾸로 유로화 가치가 올라간 것이다. 몇 달간 기다리던 조치가 나왔는데도 유럽 국채수익률 하락폭 역시 기대에 못 미쳤다. 독일과 이탈리아 국채금리는 각각 3bp, 8bp 하락하는 데 그쳤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채수익률 하락률도 6bp, 3bp에 불과했다.



이는 ECB의 부양책이 시장의 예상 수준에 불과하고 화끈한 대포가 없었다는 분석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줄리언 제숍 이코미스트는 "시장을 바꿀 만한 이벤트를 기대했지만 게임 체인저가 아닌 몇 가지 부양책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ECB 정책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커지면서 시장의 초반 열기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 고조=이처럼 ECB 부양책의 약발이 단발성에 끝날 조짐을 보이면서 시장의 관심은 벌써부터 추가 조치에 쏠리고 있다. 드라기 총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부양책을 끝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라며 필요하다면 자산매입 등 추가 양적완화 조치를 실시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장과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기 위한 금리정책은 한계에 이르렀다"며 "이미 내부적으로 자산담보부증권(ABS) 등 자산 매입 프로그램 실시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CB가 양적완화 실시를 강력 시사하자 시장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소시에테제네랄의 키트 주커스 글로벌 거시전략가는 "드라기가 양적완화라는 당근을 앞에 매달고 시장을 이끌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은행인 인테사산파올로의 카를로 메시나 CEO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상황이 진정한 전환점에 서 있다"며 "ECB가 채권 매입과 관련해 (불태화 정책을 중단하면서) 유동성을 줄이지 않기로 한 것도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의 브라이언 마틴 유럽전략가는 "ECB의 조치가 유럽 성장에 도움을 주고 테일리스크(tail risk)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테일리스크는 발생할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생기면 자산가격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드라기 총재가 너무 오래 질질 끌다가 실기했다는 비판도 많다. 아울러 양적완화 조치를 더 미뤘다가는 시장의 실망감이 확산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펜션파트너스의 마이클 가예드 최고투자전략가는 "ECB는 디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이번에 기관총이 아니라 버터 자르는 칼을 내놓았다"며 "마이너스 예금금리 시행도 은행이 소비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면서 인플레이션에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구나 ECB가 양적완화를 실시하더라도 각국의 구조개혁이 실패하는 바람에 큰 효과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엘에리언 CEO는 "ECB는 다른 대안이 없어 경제 시스템이 정상화되기까지 단지 시간을 벌려는 것"이라며 "유럽 각국 정부는 생산성과 경쟁력 향상 등 정말 중요한 일을 하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유럽 경제는 너무 취약해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며 "유럽이라는 차는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야 하지만 여분의 타이어도 거의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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