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취급 상품 국민연금과 유사
민관 역할 분담하는데 최적 파트너 민간보험, 수십년간 민영의보 취급
건강관리서비스업 참여도 허용해야 "고령화 대책을 세우는 데 있어서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제대로 안 됩니다. 해외사례를 보더라도 민과 관이 힘을 합쳐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민간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가까이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보험입니다." 강영구 보험개발원장(54ㆍ사진)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보험정책 전문가다. 지난 1982년 보험감독원을 시작으로 금융감독원 보험검사국 팀장과 국장, 부원장보를 역임하며 보험으로만 한 우물을 팠다. 그래서인지 서울경제신문과의 한 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보험업계 현안에 대해 막힘 없이 답변을 쏟아냈다. 참고자료를 보지 않고도 구체적인 수치까지 술술 풀어냈다. 그 중에서도 강 원장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부분은 역시 고령화 문제다. 고령화 문제, 민간 참여 유도해야 강 원장은 "지난해 건강보험은 1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65세 이상 노인의 치료비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며 "노인의료 수요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므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험개발원은 이를 위해 현재 고령화 대비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팀은 고령화 대응과 관련한 해외 선진제도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보험개발원은 여기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퇴직연금 및 개인연금 활성화를 위한 세제 개선안 등을 작성해 정책당국에 건의할 예정이다. "국내 보험사들의 자산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웃돌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사적연금 등 고령화 관련 상품의 활용은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에 비해 미약한 수준입니다." 인구통계자료집에 따르면 한국은 오는 2018년이면 고령사회(노인인구 비중 14%)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나 고령화 속도에 비해 사적연금(퇴직연금ㆍ개인연금) 가입률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의 퇴직연금 가입률은 18.8%로 영국(49.1%), 미국(32.8%), 독일(32.2%) 등 선진국에 한참 뒤처져 있다. 그만큼 사적연금 시장의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얘기다. 강 원장은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단독이 아닌 민간과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보험사는 취급하는 상품이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제도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공사 간 역할을 분담하는 데 최적의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또한 급증하는 사회복지 수요를 정부 재정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도 민간의 참여가 필요한 이유로 제시했다.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주요 선진국은 국가재정상의 한계 때문에 사회복지제도에서 공적 역할을 축소하고 민간 부문의 역할을 확대하는 정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정부로서는 장기 리스크 관리에 장점을 가진 보험산업의 서비스와 자산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건강관리서비스 기관에 보험사 포함시켜야 화제가 '국민건강관리서비스법안'으로 옮겨지자 강 원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4월 발의된 수정법안에는 민간보험사가 건강관리서비스업 기관을 개설하거나 출자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해서다. 그 이유는 소비자의 건강정보를 유출하고 악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험사들은 당연히 크게 반발하고 있다. "보험사는 질병정보 자체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수정법안은 말이 안 됩니다. 외국 사례만 봐도 보험사를 제외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오히려 의료비 절감효과를 얻기 위해 보험사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미국 보험사인 애트나는 생애주기별로 건강관리, 질병 회복관리 등의 자체 건강관리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결과 연간 의료비의 15% 정도를 절감하고 있다. 독일 에르고그룹의 자회사인 DKV 역시 건강보험ㆍ장기간병보험ㆍ헬스케어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민간 보험사는 수십년간 민영의료 보험을 취급해왔기 때문에 건강관리서비스에 참여하면 국민건강 증진에 일조할 것입니다. 정부로서는 민간 보험사의 건강관리서비스업 참여를 허용해야 합니다." 자연재해보험 활성화 시급 일본 대지진으로 촉발된 자연재해보험의 활성화 문제는 보험개발원의 또 다른 관심사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한국의 자연재해 피해액은 연평균 1조7,263억원에 이른다. 이 중 태풍과 호우에 따른 피해가 86%를 차지한다. 피해액은 증가추세에 있지만 위험을 헤지(hedge)할 수 있는 자연재해보험의 보급은 아직 더디기만 하다. 자연재해 피해액 대비 피해자가 보험사로부터 받는 보험금 합계액의 비율인 보험보상률은 5% 미만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결국 정부인데 미리 보험을 들어놓으면 재정손실도 줄이고 보험의 저변을 확대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자연재해보험을 활성화시키려면 일단 정부가 정책적으로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 원장은 "보험개발원은 국내 처음으로 정부가 보험료의 일부를 지원하는 농작물재해보험과 풍수해보험의 제도 도입에 큰 기여를 했다"며 "올해 말까지는 지진위험이 추가된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험사간 경쟁해 우량 보험사 걸러내야 주제를 넓혀 보험산업 발전 방안에 대해 물었다. 강 원장은 대뜸 보험사가 너무 많다며 비우량 보험사를 솎아내기 위해서라도 경쟁제한 조치를 풀어줘야 한다고 답했다. 현재 국내에는 총 53개의 보험사가 영업하고 있고 외형만 놓고 보면 세계 10위권이다. "보험사가 많은 데 비해 영업행위는 천편일률입니다. 결국 핵심은 내실인데 내실을 키우려면 보험사 간 경쟁을 시켜야 합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렉싱턴이라는 외국 보험사의 예를 들었다. 그가 세계보험자총회에 갔을 때 알게 된 렉싱턴은 자연재해 같은 거대위험 위주로 사업구조를 특화시킨 보험사이다. 한국의 보험사들과는 접근전략 자체가 다른 곳이었다. 연간 보험료 규모가 1조2,000억원 수준으로 외형 면에서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강 원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왜 저런 모델이 나오지 않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수많은 국내 보험사들이 해외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지만 해외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이런 특화된 회사가 나와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다. 통계로 소통하겠다 보험개발원은 1년 전 강 원장 취임 당시 보험연구원 분리 문제를 놓고 조직 내 갈등이 상당했다. 사원총회에서 연구원을 개발원에서 분리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부결된 것이다. 안건통과를 자신했던 강 원장으로서는 돌발변수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거시적으로 볼 때 보험연구원은 자본시장연구원이나 금융연구원 등과 경쟁하고 개발원은 통계전문 서비스기업으로 가야 합니다. 직원들도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일일이 만나 설득을 하니 받아줬습니다." 현재 보험개발원과 보험연구원은 법적으로 완전히 분리됐다. 보험연구원 분리문제를 매듭지은 강 원장은 이어 조직 슬림화를 단행했다. 종전 35개 조직을 26개로 축소하고 결제만 하는 임원들은 전원 현장으로 배치시켰다. "조직구조 개편을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다행히 직원들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줬습니다. 직원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조성했다는 점을 자평하고 싶습니다." 강 원장이 취임과 동시에 내세운 슬로건은 '보험개발원은 통계로 소통하겠다'는 것이다. 보험산업에서 최대의 자원은 통계로 보험개발원은 매년 약 10억건이 넘는 보험계약ㆍ사고통계자료를 다루고 있다. 보험업법상 보험요율 산출기관인 보험개발원이 통계로 소통하겠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강 원장은 중립적인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통계 수치를 두고 보험개발원이 정책적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아울러 보험회사와 고객의 목소리를 통계에 담지 않아야 한다고 게 그의 소신이다. 보험사들이 공개를 원하지 않는 통계도 있는 그대로 발표해 업계나 고객이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강 원장은 금감원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금감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어디서 발생했는지를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며 "하루 빨리 환부를 도려내고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분명한 것은 금융감독원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이는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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