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2년 5월18일, 아키텐. 프랑스 국왕의 직할령보다 훨씬 큰 영지를 지닌 아키텐의 대공녀 엘레어노르와 영국 왕자 헨리가 백년가약을 맺었다. 신랑(19세)보다 11년 연상인 30세의 엘레어노르는 재혼. 전남편인 프랑스 국왕 루이7세와 이혼한 지 6주 만에 면사포를 쓴 엘레어노르는 2년 뒤 헨리 왕자가 왕위에 등극(헨리2세)하면서 영국에서도 왕비 자리에 올랐다. 프랑스 왕비로서 딸 둘을 낳았던 엘레어노르는 헨리2세와 5남3녀를 두었다. 세 살 때 죽은 맏아들을 빼고는 모두 장성한 가운데 딸들이 주요 왕가로 시집을 갔기에 엘레어노르는 ‘유럽의 할머니’로도 불렸다. 사자왕 리처드와 그의 동생 존왕 등 엘레어노르의 남자아이들은 ‘로빈후드의 모험’에 등장하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부부의 금실은 오래가지 못했다. 헨리2세의 끝없는 바람기에 분노한 엘레어노르는 아들들을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 15년간의 감금생활 끝에 남편이 사망한 뒤 67세에야 풀려났다. 사망(82세)할 때까지 정치 일선을 지켰던 엘레어노르의 시대가 지난 뒤에도 프랑스 강역 내의 아키텐과 툴루즈ㆍ가스코뉴 등 영지는 영국에 충성을 보냈으나 결국은 영토분쟁을 낳고 100년 전쟁의 한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보르도산 와인의 명성도 이 시기에 얻었다. 지역 와인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영국으로 보내지고 아키텐의 주요 도시는 항구도시로 성장하는 계기를 맞았다. 연상의 이혼녀와의 결혼으로 유럽에서 가장 발전했다는 아키텐을 획득한 헨리2세는 선진제도를 영국에 들여와 행정제도와 법체계를 다졌다. 오늘날 영국 재무부의 원형인 재무재판소를 설치하고 보통법 제도의 근간도 마련했다. 재산을 지닌 자유인이 신분에 맞는 무기를 소지하도록 의무화한 무장조례는 미국의 총기소유 자유화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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