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디선가 한 번은 봤을 법한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은 19세기 초 프랑스 고전주의의 대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가 황제에게 의뢰를 받아 제작한 대형 작품입니다. 1800년 나폴레옹(1769~1821)이 북부 이탈리아를 침략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었던 사실을 기념한 기록화로서 이제는 제법 알려진 이야기지만 작품 속 화려한 백마와 황제의 모습은 화가가 고객을 미화하기 위해 극적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눈 덮인 산길이 험준했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이용한 것은 안정감 있는 노새였습니다.
같은 역사를 사실에 가깝게 그려낸 이폴리트 들라로슈의 작품도 전합니다만 다비드에게 같은 작품을 여러 점 그리게 한 나폴레옹의 적극적인 이미지 홍보 전략 덕분에 사람들의 뇌리에는 멋진 말을 탄 그의 모습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림의 주인공 덕분에 덩달아 유명해진 백마는 이집트산 순종의 아랍말로 알려진 '마렝고'입니다. 아랍말은 몸집이 크지 않으며 외형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품종으로 유명합니다. 영리한 데다 지구력도 강한 편이어서 새로운 품종을 개량할 때 많이 사용되곤 하죠.
흥미로운 사실은 프랑스에도 원래 여러 품종의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강인하고 인내심이 강한 브르통, 오래된 재래마로 군사적 목적에 적합한 아르드네, 유순하고 튼튼한 말로 농경과 전쟁에 두루 쓰였던 아리에주아, '바다의 말'로 불리는 작고 영리한 백색의 카마르그, 완전무장한 기사들을 태웠던 귀족적 외형의 불로네, 힘이 좋아 무거운 짐이나 포차를 끌었던 페르슈롱 등. 이 대목에서 왜 나폴레옹의 애마가 외국산이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오랜 전쟁 기간 중 한 마리의 말만 탔을 리 만무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나폴레옹의 애마로 기억하는 것은 마렝고뿐이라는 것도 의문입니다. 아마도 여러 나라를 정복한 나폴레옹은 점령지의 다양한 말들을 손에 넣었을 것이고 그중 훌륭한 품종의 아랍말을 전리품으로 과시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해서 다비드라는 대가에 의해 그려진 작품 속 백마가 그의 애마 '마렝고'라고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이죠. 원래 마렝고는 이탈리아 북부의 한 지역으로 1800년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한 전쟁터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전리품인 말에 전승지의 이름을 붙인 것만 봐도 자신의 초상화에 아랍말을 넣은 나폴레옹의 의중을 읽을 수 있습니다. /김정희(말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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