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즐거움은 머리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면에 닿은 두 발바닥으로부터도 온다. (교보문고 인문MD 이익재)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끔찍한 두통 때문에 대학교수도 박차고 나와 알프스의 산과 호숫가 등지를 오랫동안 걷곤 했다. 고통을 잠시 잊는 동시에 자연 속에서 상상과 발견을 펼치던 그는 그 10년 동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역작을 완성했다.
프랑스 파리 제 12대학 철학 교수인 저자가 '걷기'라는 인간의 행위를 철학적으로 사색해 엮은 책이다. 저자는 걷기를 "철학적 행위이자 정신적 경험"이라며 "지면의 단단함과 육체의 허약함을 깨닫고 땅에 발을 내딛는 느린 동작으로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조건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문명과 인위적인 사회 제도에 반대하고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설파한 장자크 루소(1712~1778)는 걸어야만 진정으로 생각하고 구상할 수 있다고 믿었다. 루소는 청춘기 유럽 전역을 걸으며 '원초적 인간'을 발견했고 중년기의 걷기는 '에밀' '인간 불평등 기원론' 등의 영감이 됐다. 인생 황혼기에는 숲 속 걷기를 통해 위안을 얻고 유고작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썼다.
걸으며 얻은 감수성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사상과 작품 세계를 일군 철학자와 작가는 이들뿐만 아니다.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프랑스와 아프리카 사막 등을 쉴 새 없이 오가며 '바람 구두를 신은 인간'으로 불릴 정도였고 자연 문학가이자 시민의 자유를 옹호한 실천적 지식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매일 산책을 하고 자급자족 생활을 하면서 삶에 대해 성찰했다. 저자는 "걸으면서 구상하는 사람은 얽매인 데가 없어 자유롭다. 그의 사유는 다른 책의 노예가 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사유에 의해 무거워지지도 않는다"고 얘기한다.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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