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구산업도 수출산업이 될 수 있습니다. 가구 선진국인 이탈리아ㆍ독일ㆍ미국 등의 회사와 맞붙어 이겨낼 것입니다. 코아스가 그동안 늘 '최초'의 기록을 쌓아온 만큼 수출시장도 업계 '최초'로 돌파구를 마련해야죠."
서울 당산동 코아스 본사에서 만난 노재근(65ㆍ사진) 코아스 회장은 국내 최초 시스템 사무가구 기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동안은 국내 시장에서만 '최초'의 기록을 쌓았다면 이제 수출용 제품 개발에 집중해 사무가구 업계의 글로벌 진출에도 깃발을 먼저 들겠다는 것.
노 회장은 앞으로의 꿈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명실상부한 가구업계의 리더로 남는 것"이라며 "코아스가 글로벌 시장에 제대로 발을 담가야 업계 자체의 글로벌 시장 진출 물꼬를 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 중인 미국 조달시장 공략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코아스가 반드시 성공해야만 정체 상태인 가구업계 전체 시장규모도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노 회장은 대기업 출신으로 기술개발 부문에서 30대에 이미 부장 자리에 오를 만큼 승승장구했다. 대기업에 몸담았을 때는 반드시 사업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직무상 잦은 해외출장이 그의 진로를 바꿔 놓았다. 당시만 해도 국내 대기업들의 기술 수준이 떨어지다 보니 미국 등 선진국에 기술을 배우러 갈 기회가 많았다. 특히 사무가구 트렌드 변화가 노 회장의 눈에 유독 띄었다. 1980년대 초에는 세계적으로 컴퓨터를 이용한 사무환경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가구 트렌드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노 회장은 여러 해외 출장 경험을 통해 앞으로 한국도 컴퓨터를 통한 사무환경이 일반화될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시스템 사무가구를 사업 아이템으로 삼았다.
노 회장은 "한국 역시 반도체ㆍ컴퓨터가 막 들어오는 시점이었음에도 불구, 시스템 사무가구 제작은 생각도 못할 때인데 미국 등 정보기술(IT) 선진국에서는 벌써 컴퓨터를 쓰기에 편한 사무가구가 확산되고 있었다"며 "특히나 당시에는 해외 기업 사무실에 들어갈 기회가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어 중소가구 업계에서는 세계적인 트렌드를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 전산실에서 막 컴퓨터 지원설계(CAD)를 들여놓기 시작했는데 달라진 사무환경에 기존 가구가 너무 안 맞아 나부터 불편을 느꼈다"며 "때문에 사업하기 전에 대기업에서 이미 가구를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컴퓨터 도입과 함께 새로운 사무가구 시장이 열릴 것으로 확신한 노 회장은 지난 1984년 마침내 '한국OA'라는 코아스의 전신 회사를 설립했다. 컴퓨터 사용으로 개인 집기 면적은 늘어난 반면 이동 장소는 줄어드는 사무환경을 가구에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컴퓨터를 책상 위에 놓게 되면서 책걸상 높낮이는 물론 책상 규격이 모두 달라져야 했다. 책걸상에 바퀴를 달고 의자에 회전 기능을 부여한 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시도였다.
노 회장은 "컴퓨터를 사용하면 사무공간 활용 개념 자체가 달라져 가구도 다 바뀌어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왜 아무도 만들지 않는지 궁금했다"며 "대기업 기술자로 일하면서 시스템 사무가구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사업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아마 코아스가 시스템 사무가구를 국내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하지 않았으면 기업들이 처음부터 대부분 수입가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에서 처음 시스템 사무가구를 선보인 노 회장은 대기업들에 코아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영업에 매진했다. 사업 초기에는 개발비 부담 때문에 미국 수입품을 기본으로 두고 국산화 비중을 점차 늘리는 전략을 택했다. 기존 가구보다 단가가 높다 보니 회사 설립 이후 10년 가까이 시스템 사무가구 시장에 진출하려는 경쟁업체도 나타나지 않았다. 노 회장은 아직도 국내 시스템 사무가구 시장을 연 주역으로 큰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업 초기만 해도 코아스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사무가구를 만드는 곳이 없으니 대기업조차 맞지도 않는 가구를 마구잡이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며 "대기업에서 수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150평 규모의 전시장부터 만들고 최선을 다해 영업전선에 나갔다"고 회고했다.
시장의 선구자가 되면서 코아스는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시스템 사무가구에 대한 대기업의 수요 팽창과 노 회장의 선견지명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본격적인 성장기에 진입한 셈이다. 1997년 우리나라 전체를 강타했던 외환위기 때도 회사에 대한 신뢰 덕분에 큰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오히려 환율이 오르면서 소량이지만 처음으로 미국ㆍ홍콩 등에 수출 길을 열기도 했다.
2005년에는 유가증권시장에 주식을 상장하는 데도 성공했다. 또 업계 최초로 가구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사무가구업계 '최초'의 자존심도 꾸준히 이어갔다.
하지만 위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열풍이 강하게 일면서 함께 나타난 노동운동 바람을 코아스 역시 피하지 못했다. 당시 코아스에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되면서 노사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임금인상 등 4년 반 동안 계속해서 이어지는 노조의 요구에 회사가 휘청거리면서 결국 1990년대 초 코아스는 한 차례 문을 닫고 만다.
노 회장은 "당시 빠른 성장으로 직원이 75명까지 이르렀는데 노조가 생기면서 경영에 차질이 빚어져 원래 인천 부평에 있던 회사를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며 "6개월 뒤 경기 파주에서 재기했고 지금은 당시 경험 때문에 충분한 협의를 통한 무노조경영을 실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노 회장은 앞으로도 코아스를 사무가구 전문기업으로 키워갈 방침이다. 부엌가구, 아파트용 가구 등 다른 분야로 무리해서 사업 확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 전문성만 제대로 확보하면 조만간 국내시장에서 영업을 시작할 것으로 보이는 글로벌 1위 가구업체 '이케아'의 공세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보고 있다.
노 회장은 "사무가구 전문기업으로 영역 확장보다는 수출 등 시장 개척에 더 주력할 것"이라며 "종합가구업체로 가는 것보다 전문성으로 승부해야 이케아의 국내 진출에도 영향을 안 받는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수출용 제품ㆍ소재, 친환경제품 개발에 주력해 지속가능한 기업을 이루는 것이 목표"라며 "사원을 뽑을 때도 이러한 회사의 목표에 부합하는 사람을 채용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인터뷰 내내 도덕성이 살아 있는 경영을 역설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이 마련돼야 하고 도의적 책무를 위반하는 업계 내의 반칙행위도 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노 회장은 "가구업계에서 그동안 업계 내에서 누구보다 정직하게 경영해왔다고 자부한다"며 "기존 기업들이 최소한의 도덕성은 지켜야 새로운 창업 환경도 잘 꾸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 민주화라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산업계에 상생이라는 것이 사라지면 결국 무한경쟁 속에 하나의 기업만 살아남아 시장을 독점하게 되는데 이는 소비자들에게도 매우 안 좋은 결과"라고 경제관을 피력했다.
● 노재근 회장은 |
직영서 대리점 중심으로 유통구조 바꿔 윤경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