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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씨감자마저 나눠먹자면…

‘불황기에 씨를 뿌려 호황기에 거둬라.’ ‘굶더라도 내년 농사를 위해 씨앗은 먹지 않는다.’ 두 금언은 미국과 일본 재계가 불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내세웠던 모토다. 선진국 기업들은 어려운 때일수록 씨(기술개발)를 뿌렸고 여건이 좋아질 때 그 열매를 수확해 오늘날 세계 1ㆍ2위 경제 대국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기업으로서는 지난 90년대 10년 장기불황이 ‘잃어버린 10년’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준비한 10년’이기도 했다. 어려울수록 기술개발 투자를 미국의 강요로 촉발된 85년 플라자 협정으로 엔화가 고평가되면서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졌지만 일본 기업들은 언젠가 일어선다는 각오로 차분히 준비해왔고 그 결실이 최근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불황 탈출은 ‘지속적인 기술개발’의 산물이며 투철한 장인정신, 기술인력 우대 풍토 등은 우리가 배워야 할 대목이다. 미국 경제도 9ㆍ11 테러를 겪은 2001년에 불경기를 경험했다. 10년 만에 찾아온 불황을 맞아 미국 기업들은 인력 감축, 비핵심사업의 아웃소싱 등을 단행하면서 경비절감에 나섰지만 기술개발 비용만은 오히려 확대했다. 사상 초유의 테러 참사를 당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안개상황 속에서 인텔ㆍ제너럴일렉트릭(GE)ㆍ델컴퓨터ㆍ3M 등 미국 굴지의 기업들은 자신의 영토를 보전하기 위해 기술개발에 나섰고 그 결실이 맺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칩 메이커인 인텔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인텔의 연구개발(R&D) 비용은 10년 전인 91년에 6억달러였으나 2000년에 39억달러로 급증했고 미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 2001년에는 무려 42억달러에 이르렀다. 기술로 숨쉬는 이 회사가 컴퓨터의 두뇌로 불리는 마이크로프로세서(CPU)를 비롯, 컴퓨터와 인터넷에 관련한 기술산업 분야에서 여전히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것은 어려울 때 씨를 뿌렸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업 여건도 악화하고 있다. 90년대에 달러 약세가 일본 기업을 강타한 것처럼 5년째 계속되고 있는 원화 강세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한국 기업의 국제경쟁력과 수익을 옥죄고 있다.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선 국제유가는 1ㆍ2차 오일쇼크 이상의 충격으로 다가오고 국내외 금리마저 상승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 기업은 이른바 신3고의 버거운 시련을 맞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은 경제외적인 시련에 봉착해 천문학적인 돈을 사회공헌기금 명목으로 뿌리고 있다. 삼성이 8,000억원을 내겠다고 한 데 이어 현대자동차도 지난해 순이익 2조3,000억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1조원을 내놓았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선진국들은 고유가 문제보다 기름 고갈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탄소에너지의 고갈에 대비해 매년 수십억달러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는데 한국 정부가 지난 10년 동안 차세대 자동차 개발에 지원한 비용은 1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부 지원이 부족하면 민간기업이 투자해야 하는데 그나마 수익의 절반을 잘라 나눠 먹는 데 쓰다가 언제 선진국을 따라갈 것인가. 기회 놓치면 효과도 적어 한국 경제는 몇 년째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고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을 이끄는 것이다. 이 시기를 놓칠 경우 한국 경제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중국과 고도기술로 재무장한 일본 사이에서 재기의 발판마저 빼앗길 수 있다. 우리 기업도 미래의 성장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씨를 뿌려야 한다. 그러자면 최근 몇 년간 챙긴 수익을 기술개발에 쏟아넣어야 한다. 씨도 제 시기에 뿌려야 열매를 잘 맺고 투자도 시기를 놓치면 효과가 반감한다.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기업들이 마지못해 거액을 내놓게 될 경우 춘궁기에 씨감자마저 나눠 먹는 우를 범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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