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티셔츠 차림의 청년이 화면 앞에 앉아 얘기를 시작한다. 말쑥한 외양과 달리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어지럽다. 때론 박수를 치며 크게 웃기도 한다. 그는 수시로 빨대를 통해 소주를 홀짝였다. 몸 속 깊이 취기가 젖어 들수록 예술에 대한 그의 ‘취중진담’은 질펀해졌다.
지난 14일 개막해 22일까지 열린 충남 서천군 ‘선셋장항 페스티벌’의 ‘공장미술제’에 참가한 젊은 작가 차동훈(28ㆍ사진)의 신작 영상물이다.
작품 속 등장인물은 작가 자신이며, 그는 실제 빨대로 소주를 마신 채 촬영에 임했다. 차 작가는 “술 취한 예술가가 예술과 나누는 야담(野談)”이라며 “예술이 아닌 예술, 즉 새로운 형식의 예술이 차세대의 예술일 것이라 생각해 전혀 예술적이지 않은 예술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 옆에 설치된 또 다른 영상작품에는 쌍둥이 형제가 등장해 서로의 머리를 잘라주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 작품에 대해 차 작가는 “똑 같은 얼굴을 가진 쌍둥이의 가위질은 마치 자기가 자신의 머리를 자르는 것처럼 보인다”라며 “나아가 이는 자신의 죽음과 장례식에서의 염(殮)을 은유한다”고 설명했다.
차동훈은 전작에서 증강현실을 이용한 현대 문명의 비판, 획일화ㆍ상업화에 찌든 현대인 등을 표현해 왔다. 2010년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의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에 선정됐다.
한편, 3회째인 공장미술제는 1999년과 2000년에 열렸다 자금난으로 중단됐던 것이 서진석대안공간루프 디렉터의 총괄기획으로 부활했다. 이번 공장미술제는 전국 28개 대학에서 선정된 대학생 작가들과 전국 10개 대안공간에서 추천한 작가 등 130여명의 젊은 작가들이 참여해 어망공장ㆍ미공창고 등 낡은 공간을 미술 전시장으로 되살려낸 행사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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