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의 대부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 민주주의의 꽃인 투표참여를 독려하며 국민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당부했다.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결식이 열린 3일 오전7시 서울대 장례식장에 모인 지인들은 유족들의 마지막 조문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조용히 묵념을 올리며 고인을 추도했다.
발인예식이 끝나고 영정사진이 빈소를 나서자 참석자들은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부르며 뒤를 따랐다.
김 고문의 관은 검은색 리무진에 실려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유족과 지인들은 정면에 '근조 민주주의자 김근태'라고 적힌 장례버스를 탔다.
버스 옆에는 김 고문이 지난 10월 블로그에 올린 '참여하는 사람만이 권력을 바꿀 수 있고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운구행렬이 명동성당에 도착하기 전 김 고문을 실은 차량은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 앞에서 잠시 정차했다. 한국기독교회관은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불렸던 유서 깊은 곳이다. 장례위원들은 이곳에서 고인을 기리는 기도를 10분간 올렸다.
운구행렬은 오전8시30분께 명동성당에 도착했고 이어 함세웅 신부의 집전으로 엄숙한 분위기에서 영결미사가 시작됐다.
영결미사가 진행된 명동성당 본당과 앞마당에는 추모 인파 1,000여명이 몰렸다.
함 신부는 "김근태 형제는 불치의 병마와 투쟁하면서도 블로그에서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며 참여하라고 당부했다. 이제 99%의 참여로 평화ㆍ민주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약속을 하며 이 미사를 봉헌한다"고 밝혔다.
추모미사의 마지막 순서에는 고인이 가장 애창하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다같이 불렀다. 참석자들은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이 고였다.
김 고문의 시신은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돼 자신이 존경하던 문익환 목사와 친구 조영래 변호사, 전태일 열사 등과 함께 영면에 들어갔다.
이날 영결식에는 원혜영ㆍ이용선 민주통합당 대표와 당 지도부, 김 고문의 고교ㆍ대학 친구인 손학규 상임고문과 이해찬ㆍ정동영 상임고문 등 주요 야권인사가 총출동했다.
원 대표는 추모사에서 "김 고문의 고통은 독재의 어둡고 참혹한 시절을 기억하라고, 그래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헌신으로 세워진 것임을 기억하라고 명령하는 역사의 문신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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