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달아오른 글로벌 환율전쟁이 미국 경제 회복세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출구전략의 향방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달러에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서 미 성장률이 예상보다 낮아질 조짐을 보이고 있고 해외 유동성 유입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둔화되고 자산 거품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아직 미 경기 회복세가 탄탄한 만큼 당분간 달러 강세를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위안화 절하를 위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거나 달러가치가 '1달러=1유로'를 뜻하는 패러티(동등성) 수준까지 급등할 경우 미국마저 환율전쟁에 뛰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미 상무부는 5일(현지시간) 지난해 12월 무역적자가 17.1% 증가한 466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시장 전망치인 380억달러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 지난 2012년 11월 이래 최대 규모다. 수입이 전달보다 2.2% 늘어난 2,414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수출은 0.8% 감소했다.
무역적자 급증에 가뜩이나 저조했던 지난해 4·4분기 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잠정치인 2.6%에서 더 하향조정될 수 있다는 게 로이터 등의 지적이다. JP모건체이스의 마이클 페롤리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도 "세계 경제 둔화와 달러 강세로 무역적자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4·4분기 미 성장률이 2% 정도에 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달러 강세의 역풍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실적이 둔화된 미 수출 기업들이 속속 인력감축 등 비용절감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재 기업인 프록터앤드갬블(P&G)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인 페이스북은 환차손이 올해 매출을 각각 5% 깎아 먹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미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올 1월 53.5를 기록하며 지난해 12월 55.1과 시장 전망치인 54.5를 모두 밑돌았다. 몇 개월 뒤 제조업 경기를 예상할 수 있는 내구재 주문도 지난해 12월 전월 대비 3.4% 감소하면서 우려감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미 정부는 달러 강세가 아직 감내할 정도라고 보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일본 등 주요 교역국이 양적완화를 통해 경제를 회복하는 게 결국 미 경제에도 이익이라는 것이다.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은 이날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미국은 환율 조작국에는 압력을 가하겠지만 경기침체 탈출을 위해 내수부양 정책을 펴는 경우는 용인할 것"이라며 "일본의 엔화 약세는 미국과 같은 양적완화 조치의 결과이며 중국의 환율정책도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의회 일각에서 유동성을 풀어 통화 절하를 유도하는 국가들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추진하려 하자 정면으로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달러화가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거듭할 경우 미 정부 역시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처지다. 이미 자동차 등 수출 기업, 노조, 일부 정치권은 "중국·일본 등의 환율조작에 미 기업이 파괴되고 있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연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달러 강세가 2% 인플레이션 목표치 달성에 영향을 미치면서 연준 정책 운용에 복잡한 요소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시장도 기준금리 인상 시점 전망을 속속 늦추고 있다. CNBC가 지난달 말 월가 이코노미스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첫 금리 인상 시점으로 올 9월이 예상됐다. 이전 조사에서는 7월이 다수를 차지했다. 미 10년물 국채 수익률의 경우 2013년 3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금리 인상 연기에 베팅하고 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 토마스 코스터그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실업률은 낮아지고 있지만 저조한 임금 상승과 인플레이션 탓에 연준이 올 9월까지는 초저금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경우 전날 강달러를 이유로 연준이 올해 금리를 올리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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