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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정치·외교적으로 경색 국면을 이어가면서 양국 간 경제교류도 타격을 입고 있다. 단적인 예가 양국 간 무역규모 감소다. 지난 2011년 1,080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이래 3년 연속 줄어들며 지난해는 859억4,000만달러에 그쳤다. 올해 상반기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교역량이 17.6% 위축된 371억6,000만달러에 불과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4년 연속 감소세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한일 인적교류의 경우에도 올 들어 5월까지 한국을 찾은 일본인 숫자는 84만4,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즈니스 목적의 일본인 방문객 수가 줄고 있어 양국 관계 악화가 비즈니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기업인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 둔화 여파로 양국 간 교역규모가 위축된 가운데 저유가·엔저 등의 영향도 있겠지만 얼어붙은 양국의 정치·외교 문제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때문에 한일 간 과거사 및 영토 갈등과는 별개로 경제·안보·문화 등 다른 분야의 협력은 활성화한다는 정부의 '투트랙' 기조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명분(과거사)을 중시하면서도 실리(경제)를 위한 교류만큼은 확대하라는 것이다. 또 더 나아가 양국 경제계 및 재계에서 앞장서서 교류 활성화에 나서 교역량 1,000억달러 시대를 다시 열고 한일관계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03년 협상 시작 후 1년 만에 중단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본은 우리의 수출 순위에서 지난해 3위에서 올해 상반기 5위로 내려앉기는 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교역 상대국이다. 일본 입장에서도 한국은 제3위의 수출 상대국이다. 교역규모가 큰 국가일수록 FTA 체결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볼 때 한일 FTA는 양국 모두에 중요한 과제인 셈이다. 올해 5월 각각 2년여 만에 개최된 한일 재무장관회의와 통상장관회의에서는 한중일 FTA에 대한 논의 진전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일본과의 무역에 있어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는 대일 무역적자는 2010년 361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후 적자폭이 축소되며 지난해 216억달러를 나타냈다. 이는 일본과의 절대적 교역량이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무역적자의 핵심 원인인 소재·부품 분야에서 우리 기술력이 향상되고 수입선을 다변화해 대일 수입이 둔화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어느 한쪽이 이기고 지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양국이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경제협력 분야를 모색해 경제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찾을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2월에 종료된 한일 통화스와프 역시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외환보유액이나 경상수지 측면에서 양국의 경제 복원력이 충분한 만큼 한일 통화스와프를 종료해도 된다고 밝혔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오는 9월 금리인상 가능성이 커진데다 중국 경제 둔화 등 대외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어 한일 통화스와프 종료가 언젠가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노성태 전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을 중단한 것은 아시아 금융협력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조치"라며 "협정 부활을 모색해 양국 간 화해를 금융·경제 부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5월 서울에서 열린 '제47회 한일경제인회의'에서도 한일 통화스와프 부활과 한중일 FTA의 조속한 체결, 우리나라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등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300여명의 양국 경제인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는 △제3국 공동진출 확대와 미래 성장 분야에서의 협력 △금융 부문의 정책공조와 통신 분야 협력확대 △청소년 교류와 대학생 기업인턴십 연수 등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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