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이 목표가 돼서는 안됩니다. 인간 본성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생명력이 있습니다."
인기 드라마 '미생'의 웹툰 원작자인 윤태호(사진) 작가는 '2014 창조경제박람회'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해 "책상 위만이 온전한 내 세계"라면서 "작품을 구상할 때 경제·상업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의 교과서'로 불리는 웹툰 '미생'은 치열한 직장생활을 현실감 있게 담으며 누적 판매 부수 200만부를 돌파한 화제작이다. 최근 그의 웹툰 미생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 등 2차 창작물을 겨냥한 웹툰 작업은 안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작가정신이 담긴 작품을 먼저 만들면 시장이 알아서 따라온다는 것이다.
윤 작가는 기획에서 연재 종영까지 전작 '이끼'에는 5년, '미생'에는 4년 7개월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는 "원작이 2차 저작물로 확장되는 것을 터부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2차 저작물로 확장되는 것만이 작품의 성공이라는 작가들의 인식은 경계해야 한다"면서 "잘 만들어진 웹툰이 있다면 시장은 이를 알아보고 반드시 2차 창작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류 영향으로 천편일률적인 상업 웹툰이 쏟아지는 현상에 대해 윤 작가는 작가와 작품의 개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시스템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지만 작가들은 독자들의 요구나 사고방식을 고려해 작품활동에 예민해져야 한다"면서 "웹툰 기반 한국 드라마나 영화들이 해외에서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지만 흥행에 집착하기보다는 세계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인간 본성을 다루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뻔한 이야기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는 얘기다. 윤 작가는 미생 드라마가 타 드라마와 다르게 자극적이지도 않고 모두가 알고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는 것은 시청자들도 한 번쯤은 겪어봤을 감정들을 자세히 묘사해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윤 작가와 함께 이 자리에 참석한 이재문 CJ E&M PD는 미생 기획단계에서 현장을 직접 찾아 체험하고 막내 작가들을 2개월 동안 무역상사 인턴사원으로 취직시켜 회사 전반에 대한 분위기를 몸소 느끼게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 PD는 "소재 고갈론이 거론되면서 지상파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 산업 전반이 위기상태"라면서 기획자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탈피해 창작자 중심으로 가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리메이크 열풍은 이미 오래됐지만 웹툰이 새삼 주목 받는 것은 소재 부족과 시청자들의 기호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검증된 작품을 하겠다는 의미"라면서 "결과를 내라고 종용하는 체제에서 탈피해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는 재능 있는 작가들이 본인들이 고수하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게 시스템 전반에 대해 다시 살펴볼 때"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