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늦은 오후, 국회 정론관은 신의진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의 기자회견과 동시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신 원내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민주통합당의 당직자가 한 여기자를 성추행했다고 발표했다. 기자들이 모여 있는 정론관에서는 순식간에 피해자가 누구인지 등에 대해 입길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정작 해당 여기자가 브리핑 내용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본인이 '가십'의 중심에 놓인 것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성폭력ㆍ성추행 사건의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사건 이후의 '2차 피해'가 쉽게 유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ㆍ성추행 사건에 아직도 우리 사회의 시선은 여성이 어떤 옷을 입고 있었으며 평소 행동은 어떤지 따위에 관심이 쏠리기 일쑤다. 그 과정에서 여성은 더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성폭력ㆍ성추행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대응을 넘어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성추행 공론화가 과연 이러한 고민 아래 이뤄졌는지 우려스럽다. 신 원내대변인은 해당 여기자에게 미리 연락을 취했느냐는 질문에 그 여기자도 공론화를 원했을 수도 있다는 어이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사건과 무관한 제3자가 당사자의 목소리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건을 알린 셈이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본질적 문제 의식에서 사건을 알렸다면 여기자들이 안전하게 취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든지,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든지 등도 함께 얘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단순히 민주당과 언론사가 사건을 은폐했다는 내용에만 그친다. 여기자의 문제 제기로 해당 당직자에 대한 징계가 이미 이뤄진 상황에서 전국민을 상대로 성추행 사실을 방송하지 않았다는 것이 은폐라고 할 수 있을까. 새누리당은 이번 사건을 알리면서 민주당을 향한 효과적인 공격 기회를 잡았다. 성추행 사건을 상대당에 대한 공격의 도구로만 보는 새누리당의 시선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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