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윤석열 부장검사)는 회사의 재무상황이 악화된 상황을 알면서도 경영권 유지를 위해 신용등급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2,151억원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장남 구본상(42) LIG넥스원 부회장을 구속기소했다고 15일 밝혔다.
또한 동일한 혐의를 받고 있는 구자원(76) LIG그룹 회장과 차남인 구본엽(40) 전 LIG건설 부사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검찰은 오너 일가를 보좌해 사기성 어음을 발행하는 작업에 힘을 보탠 임원 4명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그룹차원의 관리업무를 총괄해 왔던 오춘석(53) LIG 대표와 LIG건설에서 자금 및 회계실무를 도맡았던 정종오(58) 전 LIG건설 CFO를 구속기소하고 김모(49) LIG재무관리팀 상무와 김모(46) LIG전략기획팀장은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2011년 2월 이후 발행된 242억원 상당의 CP에 대해서만 사기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고발했으나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한 검찰은 “오너의 지배권이 걸린 그룹차원의 CP사기”라며 2010년 10월부터 발행해 지급불능 처리된 2,151억원 전액을 혐의에 포함시켰다.
검찰에 따르면 오너 삼부자는 지난 2009년부터 광범위한 회계 분식을 통해 CP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조작하도록 지시했다. 기업을 뿌리째 썩게 만드는 분식회계가 시작된 이유는 LIG그룹이 2006년 건영을 인수하며 부담하게 된 3,800억원의 부채에 있었다. 경영진은 채무 부담을 최대한 줄여보려 외국계 캐피탈사 등과 주식스왑계약(풋옵션)을 체결했고, 결국 이는 LIG건설이 살아남느냐 마느냐가 곧바로 오너 일가의 지배권을 결정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곧 이어 불어 닥친 세계적인 불황은 경영진의 판단을 최악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주택경기가 꽁꽁 얼어붙은 2009년 하반기, LIG건설의 매출액 대비 부채총액은 각 2,972억원에 4,007억원으로 불어날 정도로 경영상태는 심각했다. 건설업계에서 통상적으로 부담하고 있는 보증채무도 2007년 5,037억원에서 2008년 1조1,954억원, 2009년에는 1조 6,642억원으로 크게 불어났다. 비상경영체제를 구축하고 금융권으로부터 긴급차입을 받았지만 LIG건설의 부도는 '시간문제'가 되어버린 2010년, 오너 일가는 탈출계획을 세운다. 허위로 작성한 분식회계로 신용등급을 조작한 뒤 CP를 발행, 시장에 손실을 떠넘기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들의 전략대로 '투자적격' 등급만을 믿은 천 여명의 투자자들로부터 모인 쌈짓돈은 LIG그룹의 연명자금이 됐다. LIG그룹은 2010년 10월부터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지난해 3월 21일까지 정상적인 기업활동은 제쳐두고 오너 일가가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몰두했다. 계열사들의 손실을 피하기 위해 평내 리가 사업장의 수익을 기반으로 구성된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이 정상적으로 결제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 증권사를 거쳐 일반 투자자들에게 판매한 것도 그 중 하나였다.
검찰 관계자는 그룹 전반이 얽힌 이번 사건에 대해 "사기죄의 조건을 3중으로 충족하는 기획사기"라며 "분식회계로 투자등급을 조작했고, 이를 신용평가기관에 제출한 후에는 변제할 의사가 없는데도 CP를 발행했다"고 지적했다.
오너 일가를 동시에 재판에 넘기는 상황이 이례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이 관계자는 "경영권을 잃게 될 상황이 오니까 자신들이 받아야 할, 경영판단에 대한 손실을 시장에 전가한 것"이라며 "삼부자 모두를 구속하지 않은 것만으로 해도 상당한 선처"라고 말했다.
아울러 검찰은 구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분식회계를 시작한 2009년께 부터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의식하고 모 법무법인의 자문을 받아 형사처벌에 대비했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검찰은 LIG건설의 기업회생신청을 앞두고 ▦ 구본엽 전 부사장이 돌연 이사직을 사임해 관련 업무결재를 미뤘으며 ▦ 회생신청 직후 관련 자료를 전부 폐기하고 ▦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삭제하도록 한 정황을 들었다.
향후 검찰은 LIG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비롯해 금융기관 상대로 벌인 대출사기 등 CP발행과 연관된 여러 의문점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수사를 해나갈 계획이다.
LIG그룹 측은 “검찰이 발표한 혐의에 대해서는 법원 재판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소명할 것이며 특히 대주주의 관여 혐의는 한 치의 의혹없이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입장을 내놨다. 이어 “LIG건설 CP발행으로 발생한 서민 투자자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배상방안을 수립하고 있으며 빠른 시일 내 실행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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