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합 없는 유로존, 미래도 없다.' 그리스ㆍ스페인ㆍ포르투갈ㆍ아일랜드ㆍ이탈리아를 지칭하는 'PIGS의 재정 부실'에서 출발한 유럽발 재정위기가 출범 11년째를 맞이한 유로존의 미래마저 뒤흔들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PIGS 국가들의 재정위기와 관련, "유로존 16개 국가들은 재정ㆍ경제ㆍ임금 정책 등 중요 정책을 통합 결정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근본적 결함을 안고 있다"며 "유로 강세 국면에서 숨겨져왔던 '태생적 결함'이 불거진 만큼 유로화의 안정성에 의문을 표하는 투자자들이 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 16개국의 단일 화폐인 유로화는 지난 1999년 1월1일 출범 이래 10여년 동안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견제할 강력한 통화로 군림해왔다. 16개국 통화를 한데 묶은 탓에 국제 비즈니스 등에서 편의성이 돋보이며 강세 구조를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 5일(현지시간) 유로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4주 연속 하락하며 8개월 대비 저점에 머물렀다. 엔 대비로도 유로화는 1년 기준 최저 가치를 기록해 유로존 경제 회복에 족쇄를 채우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7일 뉴욕타임스(NYT)는 "회원국 경제 규모를 한데 묶어 '강한 유럽'을 건설하려는 EU의 실험에 위기가 찾아왔다"며 유로화의 미래에 의문을 제기했다. 주제 마누엘 바르소 유럽위원회 의장의 고문인 폴 드 그라위 이코노미스트는 신문에서 "유로권의 정치적 통일 없이는 유로존의 장기 존속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로존의 통화정책은 유럽중앙은행(ECB)이 결정하지만 재정 및 임금 등은 각국 정부의 몫이다. ECB가 재정적자의 목표치와 허용치를 각각 제시하지만 강제할 권리는 사실상 없다. 게다가 이번 유럽발 파문 역시 그리스가 재정적자 규모를 거짓으로 축소 제출했던 사실이 파악되면서 시작됐다. 그리스의 재정적자 위기도 '강한 유로' 국면에서 확대된 방만한 국가 운영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 10년간 그리스는 유로 강세로 경제 규모 이상의 수혜를 누려왔다. 최저 수준의 금리가 '대출 붐'을 양산하며 정부와 소비 부문 모두에서 부채가 빠르게 늘었다. 국영기업 노동자 수는 지난 10년간 두배로 늘어 현재 노동자의 25%가 국영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정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그리스의 정부적자는 유로존 목표치의 네배, 허용치의 두배에 달한다. 민간 부문의 경제 기여도는 지극히 낮은 반면 공공기관의 임금과 연금은 상향흐름을 이어왔다. 신문은 "공공 노조는 데모만 하면 콩고물이 생겼다"며 "연금 및 임금 축소가 나타날 경우 강한 사회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언급했다. 역내 강대국인 독일ㆍ프랑스 경제가 미약한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지만 이들 나라의 경제는 아직도 침체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제 크기의 차이가 큰 나라들의 통화를 한데 묶은 이 같은 단순 통합이 과연 적절하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인 셈이다. 유로존은 역내 위기 발생시 공동 구제에 관련된 방침도 없다. 위기에 대한 대응 수위가 낮고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다. NYT는 사설에서 "포르투갈의 구제금융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 구제만큼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차라리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가는 게 더 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독일ㆍ프랑스 등 역내 강대국들은 지난해 동유럽 국가의 은행 위기 국면에서도 "타국 부실에 투입할 자금은 없다"며 "각 나라의 일은 각 나라가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오래 고수한 바 있다. 프랑스 르몽드지가 최근 독일ㆍ프랑스가 구제금융에 대비한 비축 자금 마련 계획에 합의했다는 보도를 내놨지만 양국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글로벌 자금의 안전자산 이동 기조와 달러화의 상대적 매력도도 당분간 유로화의 강세 전환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유로화의 강세 요인 중 하나가 미국ㆍ일본보다 낮은 재정적자 전망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달러 강세가 좀더 진행될 수 있다는 시각도 힘을 얻고 있다. 실제 달러화는 1ㆍ4분기 이상 약세 국면을 이어오며 수출 및 소비 회복에 힘을 보탰다. 게다가 이미 위기 국면에서 마지막까지 버텼던 미국 내 정보기술(IT) 기업을 중심으로 임금 및 고용 회복이 가시화되고 있다. NYT는 사설을 통해 "그리스 정부는 세금 증세 등으로 3년 안에 정부 적자를 3% 이하로 낮춘다는 계획이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 계획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며 "만약 유로존이 그리스를 실패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유로화 미래에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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