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쏟아질 부당한 압력을 단호히 뿌리치고 재정투입 원칙대로 추진하는 게 긴요한 과제라는 얘기다. 현 시점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고 판명된 사업들이다. 부적격 프로젝트는 조 단위 재정이 투입되는 철도와 도로 같은 사회간접자본시설(SOC)만 추려도 10여개에 이른다.
문제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이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국가기간교통망 사업은 조사를 아예 면제해주자는 황당한 법안도 국회에 제출돼 있다. 지난달에는 전국 자치의회의장협의회가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전철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공약은 어떻게든 이행한다니 이 참에 대못을 박아두자는 심산이다.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공약남발이 1차적 원인이지만 정부 스스로 자초한 탓도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의 면제 재량권을 사실상 무제한 인정하는 허술한 법령이 화근이다. 10조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된 4대강 사업의 졸속 논란은 면제 폐해의 단적인 사례다.
우리는 지역공약은 장기 재정계획과 예산지침에 의해 원칙대로 추진돼야 한다고 누차 지적했다. 그러려면 혈세 300억원 이상이 들어가는 사업은 예외 없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야 한다. 면제기준 역시 엄격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고쳐 재정준칙을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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