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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인류사의 전령' 달리기를 말하다

■ 러닝- 한 편의 세계사 (토르 고타스 지음, 책세상 펴냄)<br>권좌 지키기위해 달렸던 파라오<br>인종차별 벽 뛰어넘은 오웬스등<br>사실·신화 종횡무진 넘나들며<br>흥미진진한 달리기의 역사 추적



1887년 단거리 경주에 출전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바비 맥도널드는 출발선에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출발 신호와 함께 뛰쳐나간 그는 다른 선수들과 엄청난 격차를 벌이면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는 우연히 이 동작을 발견했다. 추위를 잘 느끼던 그가 바람을 피하기 위해 출발 전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엉겁결에 출발한 것이 계기였다. 새로운 동작에 깜짝 놀란 관중과 선수들은 불공정한 동작이라며 항의했지만 이내 새로운 출발법으로 전세계에 널리 퍼지게 돼 오늘날 달리기 시합에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포즈가 됐다. 달리기는 단순하다. 두 다리가 성하다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도구도 필요 없다. 이 때문에 인간은 과거에도 달렸고 지금도 달리고 있으며 앞으로도 달릴 것이다. 다만 달리기의 의미와 목적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랐다. 누군가는 주인의 '전령'이 되어 한시라도 빨리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달렸고 누군가는 인종차별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정치적인 목적으로 달렸으며 건강을 위해, 혹은 그냥 달리기도 한다. 노르웨이의 민속학자인 저자는 인류 역사 속에 담긴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역사적 사실과 신화, 전설 사이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달리기의 역사를 추적해 744쪽의 방대한 분량에 담았다. 책에는 권좌를 지키기 위해 달려야 했던 이집트의 파라오부터 인체의 한계를 시험했던 '울트라 마라톤', 인종을 초월해 사랑받은 '제시 오언스', 전 세계적인 조깅과 마라톤 열풍까지 달리기에 관련된 '거의 모든 역사'가 흥미진진하게 담겼다. 과거의 달리기는 '목적'이 분명했다. 18세기 이전에 귀족들의 발 역할을 했던 '전령'은 특히 달리기의 의미가 컸다. 페르시아와 아테네 간의 전투에서 승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아테네에서 뛰어간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기리기 위해 마라톤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18세기 독일에서 공개 처형을 선고 받고 처형 당할 위기에 처한 소녀의 일화도 있다. 소녀를 불쌍히 여긴 한 귀족 부인이 사형 집행을 유예하도록 전갈을 보내고 이를 받아든 전령은 사형집행 직전 소식을 전해 가까스로 소녀를 구한다. 덕분에 전령은 그날 영웅이 되지만 늦을까 봐 마음을 졸인 덕에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만다. "내가 달리기를 통해 배운 것은 인생이라는 달리기 경주에서 선수는 단 한 명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1968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앰비 버풋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달리기에 대한 의미는 더 다양해졌다. 달리기는 이제 단순히 운동차원을 넘어 정치와 문화, 종교, 나아가 삶 그 자체와 다르지 않게 됐다. 달리기가 인간 군상과 삶의 철학까지 담아내기에 충분한 소재임을 보여주는 이 책은 읽다 보면 빨리 나가 달려야 할 것 같은 욕구를 샘솟게 한다. 3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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