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도 제대로 없는 고아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는 무허가 판자촌에 살며 넝마주이 생활을 하다 우연한 계기로 야당 전당대회를 방해하려는 정치깡패들에 동원된다. 둘은 이 싸움을 기점으로 헤어지게 되고 무일푼에 배운 것도 없기에 결국 각자 정치인이 뒷배로 있는 조직폭력배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된다.
한편 당시 정부는 서울의 인구과밀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의 중심을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기는 계획, '남서울 개발계획'을 은밀히 추진한다. 움직임을 눈치챈 투기꾼들이 강남의 땅을 매입하기 위해 모여들고 정치권 역시 다가오는 대선 자금 마련을 위해 땅 투기를 모의한다. 종대와 용기 또한 '내 땅 한번 원 없이 만들어 보자'며 이 아귀다툼에 뛰어든다. 가진 것도 권력도 없는 종대와 용기가 할 수 있는 것은 폭력뿐. 강남은 곧 피비린내가 나는 전쟁터가 되고 만다.
과수원과 뽕밭만이 가득하던 허허벌판에서 불과 수십 년도 채 안 돼 고층빌딩이 밀집한 도시 최대의 상업·주거지구로 변한 곳. 이 대한민국 강남의 형성과 발전에 얽힌 복잡한 이야기들에 홀린 창작자들은 전에도 많았다. 그럼에도 인간의 끈적한 욕망을 드러내는데 강점을 보였던 유하 감독이 '강남'이라는 단어를 영화의 표제로까지 끌어 '천민자본주의의 단면을 담아내겠다'고 했을 때는 무언가 색다른 것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는 강남이라는 공간을 그야말로 가장 표피적인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었다. 카바레와 유한마담, 복부인과 땅투기꾼, 조폭과 정치깡패 등 온갖 자극적인 소재들이 줄지어 나오긴 하지만 그게 전부다. 무언가 강남의 속살을 보길 원했다면 이 영화는 그 해답을 주지 못한다.
무엇보다 캐릭터들의 욕망과 행동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 이야기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선택은 언제나 너무 극단적이고 뜬금없어 보이기만 한다. 캐릭터와 이야기가 설득력을 잃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액션은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 채 그저 피비린내만을 남길 뿐이다. 영화는 21일 개봉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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