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포스코)이 처음 제철소를 건설하려고 할 때 세계은행 등 세계 유수의 전문 기관에서 분석해 내린 결론은 사업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견은 외국 차관 도입에 영향을 미쳐 결국 차관 도입이 무산됐다. 포항제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을 찾아냈고 절박함과 열정으로 사업을 추진해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이 바로 기업가정신의 사고방식이요 행동양식이다.
이처럼 기업가정신은 논리적 분석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다양한 패러독스를 담고 있다. 기업가정신의 패러독스를 더 잘 이해할 때 진정한 기업가정신을 꽃피울 수 있다.
기업가정신의 첫째 패러독스는 '계획'의 패러독스다.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창업과 신규 사업은 사업계획 등 체계적인 준비와 분석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불확실성이 큰 창업과 신규 사업 추진과정에서 본질적으로 모든 것을 다 계획할 수도 없고 계획대로 움직여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계획도 중요하지만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는 대안 창출 능력과 동태적 역량이 필요하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목표를 꼭 달성해야 한다는 전략적 의지와 절실함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기업가정신의 핵심에는 기업가의 역량과 절실함이 있다.
둘째는 '확률'의 패러독스다. 기업가정신은 성공을 추구한다. 그렇지만 성공하려면 먼저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할 때는 늘 가능성과 위험성이 공존한다. 획기적인 기회를 추구할수록 성공 확률은 작아진다. 과거에는 10개의 과제를 추진할 때 모두 성공하고 각각 10%를 남기는 게임을 선호했다. 그러나 이제는 10개의 과제 중 2개만 성공하지만 그 2개에서 각각 10배를 벌어 8개의 실패를 상쇄하고도 남는 게임도 해야 한다. 이런 게임이 대기업에서는 여러 개에 동시에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투자로 나타나지만 자원 능력이 작은 벤처 기업에서는 여러 번의 시도 중 한 번의 성공을 기대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실패가 없는 성공만을 추구하는 것은 기업가정신의 본질에 비춰볼 때 현실성이 낮다. 확률 게임이 아닌 기댓값 게임을 해야 한다. 물론 실패를 줄이기 위한 위험관리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셋째는 '규율'의 패러독스다. 조직이 강력한 규율과 통제 시스템, 체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을수록 정해진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여 목표를 달성하기 쉽다. 그렇지만 빠르게 변화하고 창의성이 요구되는 새로운 기업 환경에서는 규율 중심의 조직은 오히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렵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나라의 일부 기업도 이러한 패러독스를 인지해 당장 전사적 변화는 어렵지만 조직 내 또는 조직의 경계에 창의혁신 조직을 만들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모내기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규율 일변도에서 벗어나 조직문화와 프로세스의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마지막 패러독스는 '자원'의 패러독스다. 자원이 많은 조직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기존 자원의 활용에 치우친 조직은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찾는 데 적극적이지 못해 새로운 환경에서 실패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가진 자원부터 분석해 이를 바탕으로 무슨 기회를 추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기업가정신은 기회를 먼저 포착하고 그다음에 이 기회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라고 요구한다. 기업가정신은 부족함에서, 결핍에서, 절박함에서, 고통에서 더 피어난다.
우리가 추구하는 기업가정신과 창조경제는 지금과는 다른 접근방법·프로세스·조직체계·평가제도를 필요로 한다. 잘 작성된 사업계획, 높은 성공 가능성, 체계적인 조직구조, 풍부한 자원 능력만을 선호하는 방식으로는 기업가정신의 나라 대한민국을 만들기 어렵다.
배종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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