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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재난 속 미국의 민주주의


미국 대선이 열리는 6일 새벽(현지시간) 뉴욕 브루클린 남단에 위치한 코니아일랜드 해변의 에이브러햄 링컨 고교를 찾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유권자들이 나와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주유 대란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 지역은 초강력 허리케인 ‘샌디’로 큰 피해를 입었다. 에이브러햄 링컨고교는 폐쇄된 주변 7개 투표소를 한곳에 합쳐 놓았다.

투표소 주변 이면도로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침수 피해를 당한 자동차 몇 대가 제멋대로 서 있었다. 학교건물 지하에 마련된 투표소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유권자와 선거담당자들이 뒤섞여 있었고 투표용지를 판독하는 스캐너 2대는 고장난 상태였다. 유권자들의 신분 확인에도 애를 먹었다. 어렵게 투표용지를 받아 든 유권자들은 늘어선 책상에 앉아 누가 보든 말든 자신이 원하는 후보에 기표를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선거의 4대 원칙 중 하나인 비밀투표가 제대로 지켜지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은 진지했다. 열흘 가까이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전전하고 있다는 60대 흑인여성 베릴 알렌은 “상황이 무척 힘들지만 버락 오바마에게 4년의 기회를 더 주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자신의 거주 지역 투표소가 없어지는 바람에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투표소를 찾아왔다는 여성도 만날 수 있었다. 컬럼비아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있는 20대 청년은 재정절벽 등 미국이 직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밋 롬니 후보가 적격이라고 판단해 그에게 표를 던졌다고 했다. 말을 건네는 외국 기자에게 그들은 자신이 누구를 지지하는지, 왜 지지하는지를 거침없이 말했다.



1년여 이상 진행돼온 이번 선거과정에서 미국의 정치는 더욱 양극단화됐고 슈퍼팩(Super Pac)까지 가세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금권정치의 양상을 보였다. 이 때문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나왔다.

그러나 참정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유권자들이 있고 그런 유권자들을 키워내는 교육시스템이 작동하는 한 미국의 민주주의는 쉽게 시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재난현장의 투표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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