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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0월18일] 몽꿋왕


쌀과 관광자원, 국왕의 권위. 태국의 키워드다. 세계적 쌀 수출국이며 관광국가인 태국의 국왕은 존경의 대상이다. 쿠데타를 포함해 어떤 정치행위도 국왕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라마 4세, 몽꿋왕부터다. 율 브리너가 주연한 영화 ‘왕과 나’의 주인공 몽꿋왕의 정책은 크게 두 가지. ‘휘지만 부러지지 않는다’는 대나무 외교와 개혁이다. 태국이 여느 아시아 국가와 달리 독립을 유지한 것도 몽꿋왕과 그 아들 라마 5세의 뛰어난 외교력 덕분이다. 1804년 10월18일 라마 2세의 43번째 자식으로 태어난 몽꿋은 젊은 날을 승려로 보냈다. 정실부인의 장남으로 승계권을 갖고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이복형에게 왕위를 내주고 왕세제로 지낸 41년 중 27년을 승려로 생활했다. 개혁종파를 창건해 오늘날 태국 불교의 틀을 잡고 서양 선교사들에게 라틴어와 영어ㆍ과학기술을 배운 것도 승려 시절이다. 제국주의 침략이 한창이던 1851년 라마 4세로 등위한 몽꿋은 영국과 프랑스의 세력다툼을 이용해 독립을 유지하는 한편으로 적극적인 산업진흥책을 펼쳤다.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쌀. 경작을 장려하기 위해 법을 고치고 중국인을 대거 받아들였다. 마침 동남아 식민지의 주곡 문제로 고민하던 영국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태국은 거대한 쌀산지로 거듭났다. 관광상품으로 각광받는 태국 궁궐들도 미얀마와의 전쟁에서 황폐해진 궁궐을 몽꿋왕이 복원한 것이다. 숨가쁜 지방시찰 일정으로 말라리아를 얻은 몽꿋왕은 1868년 64번째 생일에 병사했으나 17년이라는 길지 않은 재위기간에 근대적 독립국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왕의 초상이 실린 돈은 접지도 않는다는 태국인들의 국왕에 대한 존경심, 국가적 구심체로서 국왕의 존재도 몽꿋왕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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