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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문화 선진국으로 가는 길

나경원 <국회의원·한나라당>

유럽의 주요 도시를 다니다 보면 종교적인 건축물 외에 그 도시들에 공통적인 명소가 있음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오페라 극장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당시로는 특이하게 ‘오데옹’처럼 멋진 야외 극장들을 여럿 만들었다. 로마 시대로 접어들면서 ‘콜로세움’ 같은 경기장이 주로 만들어졌고 중세에는 교회나 성(城)이 많이 지어졌다. 그러다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면서 유럽인들은 고대 그리스 때처럼 극장을 다시 짓기 시작한다. 17~18세기 이르러 내로라하는 유럽의 도시치고 그럴듯한 외형이나 시설을 갖춘 오페라 극장이 없으면 도시 취급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큰 도시로 갈수록 경쟁은 치열했다. 당시 오페라 극장이 도시에서 차지한 비중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쯤 되면 우리 귀에도 익은 ‘라스칼라’나 ‘코벤트가든’ 같은 곳이 명소가 될 법도 하지 않은가.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로마 시대처럼 경기장을 짓는 데 더욱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현대문명을 대표하는 미국에 가보면 도시마다 ‘따분한’ 오페라 극장보다는 ‘활기찬’ 미식축구장 같은 곳이 볼거리 명소로 돼 있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도 흡사한 인상을 준다. 88올림픽과 지난 2002년 월드컵을 치르면서 서울은 물론 각 도시에 전용 축구장 등 다양한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다. 선진 외국과 비교해도 스포츠 인프라에 그다지 손색이 없다. 이에 반해 우리의 전통음악이나 오페라를 제대로 공연할 수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한 나라의 문화가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체육활동과 함께 문화예술의 균형 있는 성장과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의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전통음악의 발굴과 재현을 위한 ‘경기도 국악당’이 지난해에 문을 열고 한강에 ‘오페라 하우스’를 건립할 것이라는 계획이 나온 것은 참으로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문화 인프라가 국가브랜드를 높이는 저력이라는 점을 지방자치단체가 인식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새삼 유럽의 도시들이 시민들과 지방정부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오페라 극장을 세계적인 명소로 만든 것을 연상하게 한다. ‘문화적 가치가 이 시대를 지배한다’는 어느 학자의 표현처럼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겨울연가’ 드라마 한편이 2조4,000억원의 경제효과를 빚어낸 사실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한국산 대중문화의 위력이 동아시아를 뒤흔드는 이때 우리의 도시들이 세계인이 즐겨 찾는 격조 높은 문예의 전당을 만들어나간다면 그것이 곧 문화선진국으로 향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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