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3월21일, 모스크바. 소련 공산당 10차 전인대회가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을 내놓았다. 골자는 시장경제의 부분적 허용. 식량징발제를 폐지하는 대신 현물세를 도입했다. 농산물 자유판매와 소기업 운영이 허용되고 외자도입의 길도 열렸다. 사회주의 소련은 왜 자본주의적 정책을 도입했을까. 경제난 때문이다. 적백 내전과 외국의 군사간섭, 전시공산주의 체제로 경제가 황폐해진 상황에서 인구의 70~80%를 차지하는 농민들이 생산 의욕을 잃자 극심한 경제난이 찾아왔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시작한 신경제정책은 경제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1926년에는 공업과 농업 부문의 생산력이 1차 대전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부자 되세요’라는 구호가 자연스레 통하고 부농과 자본가 계층이 생겼다. 소련은 불평등을 용납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1928년 ‘부농과의 전쟁’을 선언하며 개인 토지를 몰수하고 자본가와 부농을 숙청 대상에 올렸다. 불가사의한 점은 대숙청기 당시 소련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뤘다는 점. 대공황에 빠진 미국ㆍ유럽과 달리 소련은 신경제정책을 폐지하고 계획경제에 착수한 1928년부터 연간 성장률이 14~20%에 달하는 고성장 가도를 달렸다. 1937년 공업생산은 10년 전의 네 배에 이르렀다. 스탈린의 철권통치가 통하고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배경에도 고성장으로 배양된 경제력이 깔려 있다. 문제는 불균형 발전. 중공업 일부만 발달하는 구조 속에서 경공업과 농업 부문에 발목이 잡힌 소련은 결국 1990년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몰락은 신경제정책이 짓밟힐 때부터 예고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신경제책의 핵심은 요즘도 여전히 중요하다. 사회 구성원의 의욕과 창의력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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