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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5월에 꽃봉우리 모두 필 때/내 가슴에 사랑이 부풀었다/너무나 아름다운 5월 새들 모두 노래할 때/나는 그녀에게 내 사랑을 고백했다
작곡가 슈만은 부인 클라라와의 결혼 청원을 법원에 내고 그 허가를 기다리면서 ‘시인의 사랑’(Dichterliebe)이라는 곡을 썼습니다. 기구한 결혼이었습니다. 원래 비크라는 최고의 피아니스트에게 사사했던 슈만은 원래 2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반면에 그보다 8살이 어렸던 클라라는 아버지에게 잘 훈련받은 연주자이자 재색을 겸비한 여성이었습니다. 슈만이 클라라와 결혼을 발표하자 비크는 법정 소송을 걸었고, 지난한 과정 끝에 결국 장인과 사위는 결혼에 합의합니다. 이런 어려운 배경 속에서 ‘시인의 사랑’이 탄생했습니다. 슈만은 자신의 진심을 하이네의 시에 담아 16곡의 연가곡으로 고백을 남겼습니다. 삶의 동반자이자 음악적 고향이었던 클라라가 그 마음을 받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지난 4월 14일 독창회에 다녀왔습니다.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린 공연이었습니다. 연주자는 독일에서 에반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테너 김세일 씨입니다. 에반겔리스트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이나 요한수난곡과 같은 종교극에서 해설자 역할을 하는 ‘복음사가’를 말합니다. 동양인으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에반겔리스트 시장에 뛰어든 그가 ‘시인의 사랑’과 ‘리더크라이스’(Liederkreis)라는 작품으로 대중을 만났습니다. 바로크 시대와 낭만 시대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곡들을 소화한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성악가 특유의 서사성과 창의성을 결합해 호연(好演)을 보여주었습니다. 반주자는 헬무트 도이치(Helmuth Deutsch)라는 인물로 요나스 카우프만과 같은 유명 성악가들의 지도교수를 역임했던 피아노의 거장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하모니로 어우러진 시인의 사랑은 매우 고요하지만 영향력 있는 선율로 전개되어 하나의 스토리가 되었습니다.
공연장 밖에서는 큰 마이크 소리와 대중들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국 미사였습니다. 불의의 희생을 당한 아이들을 향한 부모의 눈물 어린 사랑 고백과 자신의 첫사랑을 기념하는 가곡을 남긴 슈만의 작품이 교묘하게 겹쳐졌습니다. 두 사랑 모두 조건이 없는 애정이자 열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이런 메시지들을 제대로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인가 생각해보니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세월호 1주기가 어제였는데, 지금 시국은 또 다른 스캔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할퀴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이슈의 중심이 된 인물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조차도 ‘신뢰와 의리’를 말하면서 세상을 저버렸으니 어쩌면 그 또한 사랑의 또 다른 형태를 기대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랑의 반댓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의 표현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진 오늘날, 가장 뜨겁게 누군가를 사랑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가장 차갑게 무관심을 피력하기도 합니다. 매일매일 익숙한 누군가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슈만 또한 오랜 법정 싸움으로 장인과 처가와의 인연을 다양한 각도로 생각해 봤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평생 동반자가 될 사람에 16곡의 고백을 남겼다니,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한 번 쯤 곱씹어 볼 일입니다. 사랑의 실체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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