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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시프트] <2부> ③ 불붙은 경제영토 전쟁

"뭉치면 슈퍼파워"… TPP·FTA 등 경제블록 구축 급물살<br>"무역장벽 없는 시장 확보해 일자리 창출·내수침체 극복"…<br>美·中 등 협정국 찾기 가속<br>러 주축 '유라시아연합' 창설… 칠레·페루 '남미협의체' 등 신흥국도 합종연횡 잰걸음


지난해 12월16일 강원도 평창에서 사흘간 회의를 연 한국ㆍ중국ㆍ일본 등 3국 대표들은 3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기초 준비작업인 공동연구 최종보고서를 내놓았다. 앞서 7년간의 민간연구에 이어 지난 2년 동안의 산관학 공동연구까지 마무리됨으로써 1999년부터 수면 아래서 진행돼온 한중일 FTA 논의는 올해 본격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됐다.

한중일 FTA 구상이 제기된 이래 10여년 동안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최근 경기둔화와 맞물려 전세계적으로 '경제영토' 전쟁이 가열되면서 3국 간 논의도 급물살을 타게 된 것.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곧이어 불거진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로 세계경기가 둔화하기 시작하자 각국은 저마다 수출증대와 일자리 창출에 보탬을 줄 수 있는 협정국 찾기에 혈안이 돼 있다. 교역장벽이 없는 경제블록을 구축함으로써 내수시장의 한계나 수출시장에서의 가격경쟁 부담을 뛰어넘는 해외시장을 확보하겠다는 일념에서다.

특히 2012년은 미국과 중국ㆍ일본 등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불붙기 시작한 각 지역의 경제블록 협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본궤도에 오르는 만큼 올해를 기점으로 글로벌 교역판도가 격류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이 같은 경제블록 전쟁은 단순히 경제적 실익을 떠나 역내에서 정치ㆍ외교적인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강대국들의 의도와 맞물려 있어 글로벌 권력지형에도 큰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TPP 내세워 중국 견제 나서=세계 곳곳에서 다각도로 진행되는 지역통합 움직임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당초 칠레ㆍ뉴질랜드ㆍ싱가포르ㆍ브루나이 등 아시아태평양 4개국 간 FTA로 출범한 TPP는 이후 미국과 호주 등 5개국이 참여한 데 이어 지난해 일본과 캐나다ㆍ멕시코까지 협상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총 국내총생산(GDP) 26조달러를 웃도는 세계 최대의 경제블록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은 전세계 경제의 주요 성장동력인 아시아 시장 진출을 통해 자국의 경제난을 해소하겠다는 심산이다. 특히 미국은 TPP를 통해 최대 경쟁자인 중국 견제전략을 노골화하고 있다. TPP에 중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아태 지역에서 중국을 고립시킬 수 있고 참여할 경우 다자 간 협상의 틀을 통해 중국에 위안화 절상, 무역장벽 해소 등의 압력을 넣을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TPP가 '꽃놀이 패'인 셈이다.

다만 세계 GDP의 40%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블록 실현 여부는 가늠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TPP의 두 주인공인 미국과 일본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공통된 인식에도 불구하고 농업 및 금융 등 각 분야의 시장개방을 둘러싸고 극명한 입장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TPP에 대한 반대여론이 거센 일본의 경우 집권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으로 연내 정권교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올해 국내정세에 따라 TPP 협상 참여가 좌절될 수도 있다.

◇중국, 아시아권 경제통합으로 맞불=미국의 TPP 구상에 맞서 아시아에서의 주도권과 글로벌 경제에 대한 입김을 강화하려는 중국의 행보도 올 들어 빨라지고 있다. 중국은 한중일 FTA로 아시아 역내 주도권 잡기에 나서는 한편 석유자원 확보 차원에서 사우디아라비아ㆍ쿠웨이트ㆍ카타르 등 중동 6개국으로 이뤄진 페르시아만협력회의(GCC)와의 FTA 협상에도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특히 중국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초강대국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구상으로 '한중일+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을 아우르는 경제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중국이 한중일 FTA에 적극적인 것도 미국 주도의 TPP 구상에 일본이 동참 의사를 밝히면서 논의가 급진전되는 데 대응하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한중일 FTA가 체결될 경우 동북아 지역에는 인구 17억명, GDP 10조8,000억달러 규모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A), 유럽연합(EU)에 이은 세계 3대 경제블록이 탄생하게 된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과 성장력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좀처럼 지역통합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던 동북아 3국이 서로에게 문을 활짝 열 경우 경제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는 글로벌 경제에 적잖은 판도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흥국 경제블록도 속속 재편=강대국 중심의 경제통합 논의 못지않게 신흥국가들의 경제블록 논의도 활발하다. 지리적ㆍ문화적 근접성을 토대로 손을 잡는 신흥국들은 선진국 중심의 국제질서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키우고 경제적 역량을 확대하기 위한 합종연횡을 도모하고 있다.

올해 대선일정과 맞물려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를 주축으로 옛 소비에트연방을 아우르는 유라시아연합(EAU) 설립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해 8월 독립국가연합(CIS) 8개국 간 FTA 체결을 주도한 데 이어 오는 2015년까지 광대한 영토를 아우르는 EAU 창설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3월 대선에서 푸틴 총리가 장기집권에 성공할 경우 EU 등 서구의 경제공동체에 필적하는 유라시아 공동체 논의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남미에서도 기존의 소규모 경제블록 간 재편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브라질ㆍ아르헨티나ㆍ우루과이ㆍ파라과이 등 남미의 대표 경제블록인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에 속하지 않은 칠레ㆍ페루ㆍ콜롬비아ㆍ멕시코 등 4개국은 브라질 중심의 기존 체제에 대항하는 새로운 협의체를 구축, 남미 경제권에서 새로운 블록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 새로운 경제협의체 논의 활성화 못지 않게 주목되는 것은 기존의 1세대 경제블록인 EU의 붕괴 여부다. 재정위기의 와중에도 특정 국가의 EU 탈퇴나 연합의 붕괴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가장 진전된 형태의 경제통합체인 EU가 무너질 경우 글로벌 경제지도는 큰 변동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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