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산업은행 출범이 눈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산은과의 통합을 앞둔 정책금융공사 직원들이 대거 수은으로 가고 싶다고 지원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한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산은보다 전혀 다른 조직인 수은으로 이직하겠다는 바람이 분 것이다.
이는 산은의 인사 적체 우려와 해외 업무가 확대되는 수은의 메리트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정금공과의 통합을 준비하는 산은은 씁쓸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내부에서는 산은과 정금공이 통합돼도 '화학적 융합'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불안한 정금공 직원들= 4일 국책은행들에 따르면 최근 정금공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은으로의 희망 이직 공고에 무려 100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금공 전체 직원이 340여명인 것을 고려하면 3분의1에 가까운 직원들이 수은으로 이직을 희망한 것이다.
산은과 통합을 앞둔 정금공 인력이 수은으로 이동하는 이유는 정금공의 해외 자산이 수은으로 이관되는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정부가 정책금융 개편에서 해외 분야는 수은으로 일원화하고 국내 분야는 산은으로 일원화하기로 한 조치의 일환이다.
이에 따라 정금공은 조만간 16개 프로젝트 21억달러에 상당하는 해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 등을 수은으로 이관할 예정이다. 수은으로의 희망 이직 공고가 난 것도 자산이 이동하는 만큼 인력이 따라가기 때문이다. 수은으로 이동하는 정금공 인력의 규모는 20~30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은과 정금공이 불과 5년 전에 분리된 것을 감안하면 정금공 직원들이 대거 수은으로 이직을 지원한 것은 이례적이다. 산은과 정금공이 분리 이후 각자 인력과 조직을 키웠기 때문에 통합할 경우 겹치는 부서와 인력 조정이 불가피한 데 따른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정금공의 한 관계자는 "산은이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직원들을 많이 뽑았기 때문에 정금공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향후 인사 적체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은 관계자는 "같은 국책은행이라 할지라도 수은이 가지고 있는 독점적 지위와 해외 업무 범위 등이 정금공 직원들에게 유인이 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통합 산은 대규모 임원 구조조정 예고= 정금공 직원들의 동요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통합 산은의 임원 자리를 놓고도 조만간 회오리가 불 것으로 보인다.
현재 통합대상인 산은지주와 산은, 정금공의 임원 합계는 19명(등기·집행임원 포함)에 달한다. 산은 합병위원회는 이 가운데 6~7명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당장 산은 지주와 정금공 임원들은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합병위원회는 현재 2명(홍기택 회장, 류희경 수석부행장)인 산은의 등기임원을 1명 더 늘리고 이 자리에 정금공 출신을 선임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산은 내부에서 이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 등기 임원 선임을 놓고도 갈등이 빚어질 개연성이 있다.
통합 산은이 출범하면 산은은 일부 자회사들도 매각해야 한다. 민간 부분인 대우증권과 KDB캐피탈·KDB생명·KDB자산운용 등이 매각 대상이다. 홍 회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대우증권 매각은 통합 이후에 시장 상황을 보면서 판단하겠다"며 당분간 보유할 뜻을 밝혔다. 통합 산은은 내년 1월1일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